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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억보다 값진 3만원 … “기부하면 삶이 즐거워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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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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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3만원 기부를 이어오고 있는 김주기씨는 “기부는 삶의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천안에서 홀로 사는 김주기(64·여)씨는 지체장애 3급 장애인이다. 기초생활수급자이기도 하다. 한 달 소득이 40만원 가량이다. 하지만 지난 9년간 장애인 지원단체인 ‘푸르메재단’ 등 복지단체에 꾸준히 기부를 실천해왔다. 지금도 매월 3만원 씩을 기부한다.

파독간호조무사 출신 장애인 김주기씨
월 수급비 40만원 쪼개 9년간 선행
“어차피 빈손으로 갈 건데 나눠야죠”

 지난 11일 천안시 도장리 마을회관에서 만난 김씨는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라며 “기초생활수급비도 부족하다고 생각지 않고 거기에 맞춰 살면 된다. 여력이 안돼 더 많이 하지 못해 아쉬울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김씨가 기부를 시작한 건 2007년 12월부터다. 푸르메재단에서 비용 일부를 지원받아 잇몸 치료와 브릿지(잇몸에 보철물을 연결하는 것) 등 치과 치료를 받은 게 계기가 됐다. 그는 치료 도중 재단 측으로부터 “국내에 마땅한 장애인재활병원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김씨는 그 자리에서 재단 측에 1만원 기부를 결정했다.

 그는 “그 때 우리나라에 장애인을 위한 병원이 부족해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많이는 못 해도 조금이나마 기부할 수 있는지 여쭤보고 용기를 내 작은 정성이나마 보탰다”고 말했다. 이후 푸르메재단과 독일에서 이민자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하는 단체 ‘동행’ 등 4곳의 단체에 매달 3만원을 쪼개서 기부하기 시작했다.

  김씨가 ‘동행’에 기부를 한 데는 사연이 있다. 8남매 중 셋째인 김씨는 1971~78년 7년간 독일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가족만 바라보며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영자(김윤진 역)’의 모습이 바로 그였다.

김씨는 독일에서 번 돈 대부분을 한국의 가족에게 송금했다. 김씨는 “특근 수당을 받기 위해 늘 오후 8시~오전 6시 야간 근무를 자처했다”며 “힘들었지만 가족에게 돈을 보낼 수 있어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기억했다.

 김씨는 78년 귀국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듬해 4월 불의의 사고로 뇌를 다쳐 온몸이 마비됐다. 병원에서도 살 가망이 없다며 두 달 만에 퇴원시킬 정도였다. 그는 사고에 대해선 “가족만 아는 일”이라며 말하기를 꺼렸다. 김씨는 “기어서라도 한강대교까지 갈 수 있다면 목숨을 끊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당시의 고통을 털어놨다.

  그는 힘들 때마다 기도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다행히 차츰 몸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산책이나 스트레칭 등 간단한 운동도 가능하다. 약간 어눌하지만 의사소통도 원활하다.

김씨는 “그렇게 엄청난 고난을 겪고 나니 어느 순간 인생이 달리 보였다”며 “어차피 사람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마음의 여유만 있다면 기부는 ‘삶의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많은 분들이 기부의 즐거움을 알았으면 좋겠다”며 살며시 웃었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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