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재배치 시간 끌면 돈만 더 들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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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을 거듭하던 주한 미군의 한강 이남 재배치가 본격 궤도에 들어서게 됐다. 조영길(趙永吉) 국방부 장관과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이 지난 27일 워싱턴 회담에서 용산 미군기지의 조기 이전과 미 2사단의 이전 필요성에 합의하면서 큰 그림을 사실상 확정했기 때문이다.

한강 이북에 흩어져 있는 15개 미 2사단 예하 부대들과 용산기지를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최종 내용과 일정은 오는 9~10월에 열릴 한.미 연례안보회의(SCM)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간의 진행 과정을 보면 미국의 당초 계획대로 진행될 것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

지난 5월 중순 미국을 방문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럼즈펠드 장관과 만나 주한 미 2사단의 한강 이남 재배치를 보류해 달라고 요구했었다. 북한이 미국의 한반도 방어 의지를 오판할 수 있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럼즈펠드 장관은 "주한 미군의 재배치는 미군 전력 강화라는 판단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면서 이를 거절했다.

盧대통령의 방미로 주한 미 2사단 재배치가 유보된 것처럼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미국은 용산기지와 주한 미 2사단을 한묶음으로 남쪽으로 옮긴다는 방침을 전혀 바꾸지 않았다.

국방부 피터 로드맨 국제안보담당 차관보도 "용산 미군기지와 주한 미 2사단을 가급적 가장 이른 시간 내에, 거의 동시에 한강 이남으로 재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24일 워싱턴을 방문한 손학규(孫鶴圭) 경기도 지사에게 "어차피 해야 할 미 2사단 재배치에 시간을 끌고 단계를 나누면 경비만 더 들 뿐"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이번 장관회담에서 그동안 미군이 하던 역할 일부를 한국군이 책임지라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양 장관은 한국의 국력 신장에 따라 한반도 방위에서 한국군의 역할을 확대하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는 盧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평가에 동의했으며 한.미군 간의 일부 군사 임무를 전환시켜 나가는 데 동의했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이는 결국 한국의 방위비 증액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 또 다른 부담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국 장관은 또 "북한 핵 문제는 다자간 외교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북한의 핵무기 위협을 외교적인 수단으로 제거하려면 강력한 억제력을 바탕으로 하는 단합된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kimc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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