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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 드디어 오늘 수술의 하이라이트 환자가 수술실로 입실한다. 나이도 22세밖에 안된 앳띤 아가씨다. 그런데 암이 퍼진 정도는 오늘 수술환자중 가장 많이 퍼져 있다. 요즘은 왜 젊은 사람 환자들이 많아지고 있는지..에휴...갑상선암의 피크 연령은 40대후반에서 50대초로 되어 있는데 요즘은 30대 환자들이 진료실을 메우고 있고 이어서 20대 꽃같은 아가씨 환자들이 많아지고 있단 말이야.

최근에는 10대이하 어린이 환자들도 심심찮게 볼 수있게 되었고....갑상선암은 발병 연령대가 어릴수록 많이 퍼져 대체로 수술이 커지게 되는데 이 아가씨도 큰 수술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수술대로 옮겨 눕는 아가씨 환자의 얼굴 좀 보소, 입은 필자를 보고 웃으려고 하는데 눈언저리는 벌겋고 눈에는 눈물이 가득하다.

"왜 울어?"

"안 울려고 헀는데..."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네 노래가사가 생각나네.....마취 준비실에 누워 있을 때 천정에 쓰여 있는 글 안 읽어 봤어?"

"읽었어요, 그리고 기도까지 받았는데요"

"근데 왜 우노? 내 이쁘게 잘 해줄께"

이 상황에 왜 눈물이 안나겠나... 필자에 대한 예의로 웃어주려고 하는데 눈물이 나오는 걸 어떻게 하겠는가.

이 아가씨 환자를 처음 대면한 것은 11월24일이었다..8월 중순경 오른쪽 갑상선 부위가 눈에 띄게 불룩하게 올라와서 타병원에 갔더니 갑상선암이라고 진단해 주더란다. 처음 발견때 부터 자라는 속도가 매우 빠르더라는 것이다.

외래 초진 때 목을 만져 보니 어이구야, 처음에 불룩하게 보였다는 혹외에도 여러개의 혹이 오른쪽 갑상선에서 만져지고 오른쪽 옆목 림프절 레벨 2,,3,4 에도 크고 작은 감자들이 와글와글 진을 치고 있다.

초음파 스테이징검사(ultrasonogragpic staging)와 목CT스캔을 보니까 이거 뭐 한숨 밖에 안 나온다. 전형적인 미만성석회화변종 유두암(diffuse sclerosing variants of papillary carcinoma)인 것이다. 초음파영상에는 오른쪽 갑상선 날개를 반이상 차지하는 눈폭풍(snowstorm)의 핵이 있고, 그 옆에 그 보다는 작지만 또 하나의 눈폭풍이 있고, 희한하게도 이들 두개의 눈 폭풍 암덩어리와는 별개로 앞쪽 피막을 뚫고 튀어나온 암조직이 바위덩어리처럼 앞으로 자라 나와 있다. 이게 바로 처음 발견했을 때의 암인 것이다.

초음파영상에는 미만성의 특징인 눈폭풍에서 떨어져 나온 눈가루가 멀리 왼쪽 날개에 까지 날아간 것이 보인다. 옆목의 감자밭은 만져 봤을 때 보다 훨씬 더 그로테스크한 경치를 연출하고 있고........

큼직큼직 하게 커져 있는 중앙경부림프절들도 눈에 몹씨 거슬린다. 흠, 만만치 않은 수술이 될 것 같은데.......더 퍼지기 전에 빨리 수술해야 되겠다.

"오 코디 저 아가씨 환자 초고속으로 입원시켜 주셔..."

일요일에 입원했기 때문에 수술전 만남은 오늘 아침 회진 시간에 이루어 진다.

"수술이 좀 커질 거야. 목 절개선이 일반 갑상선수술보다 좀 길어 질거고...그래도 생각보다 흉하게는 상처가 안 남아요.수술 후 상처 레이저 치료받으면 아마 결혼할 때 쯤 되면 눈에 잘 뜨이지 않을거야, 그리고 수술후 고용량 방사성요드 치료를 한두어번 할 예정이고....첫 치료가 젤 중요해요, 첫 치료가 잘 못되면 평생 고생하게 되지...."

"네, 교수님, 잘 부탁드립니다"

수술은 오른쪽 옆목림프절 청소술, 중앙경부 림프절 청소술, 갑상선 전절제술순으로 한다.다행히도 전이된 림프절들이 침윤형(infiltative type)이 아니고 포장형(encasement)이 되어서 크기는 컸지만 어렵지 않게 주위 혈관, 신경, 근육들과 잘 분리되어 나온다, ,

커진 중앙림프절들도 성대신경(회귀후두신경),기도, 식도와 분리하고, 갑상선 과 함께 절제하는 작업도 어렵지 않게 끝난다.

그렇지만 이렇게 큰 수술을 하고 나면 파라공주님 (부갑상선)으로 가는 혈류가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는 것이다. 수술 끝날 때 까지 파라공주님의 혈색은 좋았는데.....어떡하든 부갑상선 기능은 살아 남아야 하는데 말이지...앞으로 살아갈 날이 새털처럼 많은데 손발이 저리게 되면 안되잖아...

평생 비타민-D와 칼슘을 달고 살아야 한다면 끔직하잖아...병실로 올라가면서 갑상선 전담 간호사 한나가 보고해 준다.

" 이 환자 부갑상선 홀몬과 칼슘수치가 완전 정상으로 나왔어요"

병실에는 환자의 어머니 등 가족들이 환자를 지켜보고 있다.

"안심해도 됩니다., 수술 잘 되었어요. 부갑상선, 칼슘수치 다 좋아요. 아무 탈 없이 잘 회복할 것입니다"

환자의 어머니가 말한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괜찮겠지요? 아이가 아직 어린애라서요"

"큰 수술인데도 참 잘 견뎌내어 주었습니다. 물론 괜찮을 겁니다"

그러고 있는데 이 아가씨, 또 입은 웃고 있는데 눈에는 폭풍 눈물이다.

"허~참,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네...."

참 선량한 아가씨네 하면서 병실을 나온다.


☞박정수 교수는...
세브란스병원 외과학 교실 조교수로 근무하다 미국 양대 암 전문 병원인 MD 앤드슨 암병원과 뉴욕의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갑상선암을 포함한 두경부암에 대한 연수를 받고 1982년 말에 귀국했다. 국내 최초 갑상선암 전문 외과의사로 수많은 연구논문을 발표했고 초대 갑상선학회 회장으로 선출돼 학술 발전의 토대를 마련한 바 있다. 대한두경부종양학회장,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아시아내분비외과학회장을 역임한 바 있으며 국내 갑상선암수술을 가장 많이 한 교수로 알려져 있다. 현재 퇴직 후에도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주당 20여건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으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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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 교수 기자 sohopeacock@naver.com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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