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주어지다’의 변신은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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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올해는 어떤 위로가 필요할까? 지난해엔 아들러 열풍이 거셌다.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 말라, 모든 것은 용기의 문제라는 아들러 심리학에 열광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이다”는 조언은 새해에도 여전히 유용한 덕담 같다.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글쓰기에서도 중요하다. ‘주어지다’는 일·환경·조건 따위가 갖춰지거나 제시되다는 동사로 사전에 올라 있지만 우리말다운 표현과는 거리가 있다. 영어 ‘be given’을 옮기는 과정에서 굳어진 습관으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주어지다’를 빼는 게 더 나을 때가 많다. “국회의원에게 주어진 임무”보다는 조사 ‘의’를 넣어 “국회의원의 임무”라고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추가시간 5분이 주어졌다”는 “추가시간은 5분이다”고 하면 충분하다. “보좌관은 주어진 업무량이 버겁다고 느꼈다”도 “보좌관은 업무량이 버겁다고 느꼈다”고 하면 된다.

 문맥에 따라 ‘주어지다’를 맡다·있다·오다·얻다·받다 등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주어진 일을 끝내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의 경우 ‘주어진 일’ 대신 ‘맡은 일’이라고 하는 게 더 우리말다운 표현이다. “적절한 계기만 주어지면 논의가 급물살을 탈지 모른다”도 마찬가지다. ‘계기만 주어지면’을 ‘계기만 있으면’으로 고칠 수 있다. “드디어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드디어 일할 기회가 왔다”로,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다”는 “세상에 거저 얻는 것은 없다”로 바꾸는 게 낫다. “1등에게는 부상으로 상품권이 주어지다” 역시 “1등은 부상으로 상품권을 받다”는 표현이 바람직하다.

 ‘주어지다’를 ‘주다’로 고쳐 “1등에게는 부상으로 상품권을 주다”고 표현할 수도 있다. 굳이 피동형 문장을 쓸 이유가 없는 경우다. “후보들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후보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해야 늘어지지 않는다. “그들에게 특혜가 주어졌다”보다는 “그들에게 특혜를 줬다”고 해야 의미가 더욱 명료하게 전달된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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