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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총 올 임금 인상안 % 대신 액수로 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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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한국경영자총협회(회장 박병원)가 올해 임금 가이드라인을 정액으로 제시키로 했다. ‘몇 % 인상’이 아니라 ‘몇 만원 인상’ 방식으로 낸다는 뜻이다.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줄여 청년 일자리를 확충하기 위한 첫 시도다. 노동개혁 입법이 좌절될 위기에 놓이자 경영계가 자율적으로 노동개혁 실행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몇 % 인상’땐 연봉 높은 대기업 유리
중소기업과 임금격차 해마다 벌어져
기존 직원-신입 따로 내는 것도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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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배 경총 부회장은 10일 “이달 말 또는 다음달에 낼 예정인 임금 가이드라인을 정률 방식에서 정액으로 바꿔 제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일본 게이단렌(經團連·경제단체연합회)과 렌고(連合·노동조합총연합회)가 내는 정액 인상안과 같은 방식이다. 김 부회장은 “그동안 일정 비율로 임금 인상 방침을 내놓다 보니 임금을 많이 받는 대기업은 중소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오르고, 중소기업은 적게 올라 격차를 더 벌리는 역효과가 났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2% 인상률을 제시하면 연봉 5000만원을 받는 대기업 근로자는 연간 100만원 오르는 반면 2000만원 받는 중소기업 근로자는 40만원 오르는 데 그친다. 한 해에만 격차가 60만원 더 벌어진다.

 경총이 정액 인상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1987년 임금 인상 가이드라인을 낸 이래 처음이다. 29년 만에 권고 방식을 바꾸는 주된 이유는 청년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다. 대·중소기업 간 격차를 줄여야 청년이 중소기업으로 유입된다는 판단이다. 실제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는 외환위기 이후 꾸준히 벌어졌다.

고용노동부와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97년 대기업 대비 77.3%이던 중소기업(300인 미만) 근로자 임금은 2014년 56.7%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청년실업률은 5.7%에서 9%로 확 늘었다. 일할 의욕마저 상실한 소위 ‘NEET족’(일을 하지 않으면서 교육이나 훈련도 받지 않는 사람)까지 포함한 체감 청년실업률은 27.9%에 달한다. 10명 중 3명은 실업자란 얘기다. 김 부회장은 “구인난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으로 청년을 끌어들일 수만 있어도 청년실업률을 확 떨어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취업포털 ‘사람인’이 중소기업 인사담당자 289명을 대상으로 구인 성공률을 조사한 결과 57.4%가 계획만큼 채용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낮은 보수와 열악한 근로 환경이 주된 이유로 꼽혔다.

 경총은 이런 점을 감안해 기존 직원과 신입사원 초임을 따로 제시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대기업은 초임을 좀 낮추고, 중소기업은 초임을 유지하는 형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신입사원 초임 차이가 너무 크다는 판단에서다. 출발선만 비슷해도 임금격차가 크게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경총에 따르면 지난해 300인 이상 사업장과 100~299인 사업장 간 임금격차는 연간 600만원에 육박한다. 5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하면 격차는 더 커진다. 일본은 112만원에 불과하다(일본 산로종합연구소).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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