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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주문 받는 ‘페퍼’… 로봇 대회 우승 ‘휴보’는 상용화 먼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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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프트뱅크 휴대전화 매장에서 손님을 맞고 있는 로봇 ‘페퍼’. [중앙포토]

지난달 24일 일본 도쿄 번화가인 긴자(銀座)의 소프트뱅크 휴대전화 매장에 들어섰다. ‘페퍼(Pepper)’란 이름의 로봇이 맞았다. 가슴에 달린 터치패드를 누르자 일본어 대화가 시작됐다.

한국 신성장 동력 10 <1> 로봇 산업
로봇 산업화 뒤처진 한국, 왜
로봇 시장 10년 뒤면 80조원 규모
IT 이어 ‘기술 빅뱅’ 이끌 산업 꼽혀
선진국, 글로벌 기업이 개발 주도
한국은 대학·연구소가 주로 만들어
국내 인력·예산 규모 미·일의 10%
산업화 위한 지원·로드맵 절실

 “제 첫인상이 어때요?”(페퍼) “귀엽습니다.”(기자) “당신은 새로운 제품에 흥미가 있나요?”(페퍼) “그럼요. 있지요.”(기자) “흥미롭군요.”(페퍼)

 대화를 나누다 고개를 돌리자 페퍼의 ‘시선’도 따라왔다. 손동작도 자연스러웠다. 페퍼는 ‘서비스 로봇’이다. 인공지능(AI)을 탑재해 간단한 대화부터 게임·춤추기·책 읽어주기 같은 200여 개 동작이 가능하다. 지난해 6월 19만8000엔(약 200만원)에 출시됐다. 지금도 월평균 1000대씩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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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우메오대학에서 만든 의수(義手) 로봇. 레고 블록으로 만든 장난감을 팔에 연결할 수 있다. [중앙포토]

 도쿄의 ‘패션 1번지’로 꼽히는 하라주쿠(原宿)의 네스카페에선 아예 페퍼가 커피 주문을 받는다.

 아베 유스케(阿部裕介) 소프트뱅크 상품홍보 담당자는 “오로지 페퍼와 놀기 위해 매장을 방문하는 손님도 많다”며 “현재는 로봇 한 개당 생산비가 판매가보다 비싸 팔 때마다 손해지만 로봇 문화 확산을 위해 끊임없이 투자한다”고 말했다.

 세계가 ‘로봇 전쟁’을 벌이고 있다. 무궁한 잠재력 때문이다. 산업·의료용부터 자동차·드론을 포함한 많은 영역에서 로봇 기술이 필수가 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 문제의 대안으로 꼽기도 한다.

 현재 제조업 공장에서 로봇 활용도는 10% 남짓이다. 2025년엔 25%까지 뛸 전망이다. 이기인 르노삼성차 부산공장장은 “과거엔 인력을 대체하는 자동화와 생산성 개선 측면에서 로봇에 접근했다면, 최근 로봇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고정밀 작업을 수행하는 필수 노동력”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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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부닥치면 자동으로 멈추는 독일 쿠카로보틱스의 산업용 로봇 ‘LBR iiwa’. [중앙포토]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로봇 시장이 2020년 429억 달러(약 51조4600억원)에서 2025년 669억 달러(약 80조25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전후방 산업에 미치는 거대한 파급력 때문에 정보기술(IT)에 이어 새로운 ‘산업 빅뱅’ 도화선이 될 것이란 분석까지 나온다.

 오상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강릉분원장은 “과거 IT가 다른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비용 절감의 촉매 역할을 했다면 이젠 로봇이 그 역할을 대체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도 로봇 시장에서 손꼽히는 선진국 중 하나다. 글로벌 시장에서 혼다 ‘아시모’의 유일한 대항마로 손꼽히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가 ‘휴보(HUBO)’다. 오준호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팀이 2004년 선보였다. 로봇은 무게중심이 흔들려 균형을 잃으면 곧바로 쓰러질 수 있다.

 하지만 휴보는 걷기·뛰기·춤추기 같은 고난도 기술까지 가능하다. 지난해 6월엔 세계재난로봇대회(DRC)에서 우승했다. 장애물 넘기 같은 8개 과제를 44분 만에 수행해 경쟁국 로봇을 눌렀다. 2005년 유범재 KIST 박사팀이 개발한 휴머노이드 ‘마루’는 일본 페퍼처럼 간단한 대화가 가능하다.

 문제는 상품화다. 대학·연구소가 개발의 주축이다. 여기서 만든 로봇을 상용화해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하려면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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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세계재난로봇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품질을 인정받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원의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휴보’. [중앙포토]

 오준호 교수는 “연구 인력·예산 규모가 미국·일본의 10분의 1 수준도 안 된다. 휴보 연구 인력도 8명뿐”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로봇은 고도의 핵심 기술이 많이 필요한 만큼 상용화까지 막대한 연구개발(R&D) 투자와 고급 인력이 필요한데 ‘소신’을 갖고 매달리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국의 강점인 대학의 기술 노하우를 기업과 접목시켜 산업화하기 위한 체계적 지원과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주문이 나온다.

 독보적인 ‘원천 기술’이 빈약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로봇산업은 운영체계(OS) 같은 핵심 기술을 갖추진 못했지만 제품 자체 경쟁력을 갖춰 스마트폰 시장에서 세계 1위를 달리는 삼성전자를 생각하면 된다는 얘기다. 백봉현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정책기획실장은 “가장 중요한 부품인 서버·감속모터·컨트롤러 등에서 일본·독일 부품을 주로 쓴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하드웨어 측면에서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건 맞지만 소프트웨어 측면에선 아직 멀었다”고 평가했다.

 도쿄=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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