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악인 카인, 하나님에게 싸움을 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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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뒤 추방을 당하고 있다. 아담과 이브는 죽은 아벨 앞에서 슬픔에 빠져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1825년작 ‘카인의 추방’.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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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해냄
212쪽, 1만4500원

카인의 눈으로 본 구약성경 비틀기
사람 본성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
책임은 인간 자신에게 있다고 강조

과거 ‘충성’스러운 소설 독자였으나 요즘은 흥미를 잃었거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주제 사라마구의 세계를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특히 추천하고 싶은 장편소설이다. 사라마구를 통해 소설에 대한 흥미를 되찾는, 두 마리 토끼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화끈하면서도 고상하고, 익살맞으면서도 진지하다. 중반 이후 약간 지루해지는 위기가 찾아오기는 한다. 하지만 이름난 어떤 명작 고전도 한두 군데 그런 위기는 있기 마련이 니 크게 탓할 일은 아니다.

 사라마구는 인생 자체가 도발적인 사람이었다. 무신론자였고, 평생 공산주의자였다. 생전 인터뷰에서(1922년생인 그는 2010년 사망했다) 그는 자신에게 사회적 영향력이 있다면 작가라서가 아니라 시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대의 사회정치적 이슈에 부지런히 개입했다. 1991년작 『예수복음』(영어명 ‘The Gospel According to Jesus Christ’)은 도발적인 면모에 정점을 찍은 작품. 예수를 인간적 욕망에 시달리는 존재로 그려, 98년 그가 노벨상을 받을 때 바티칸이 문제 제기를 하기도 했다.

 『카인』은 사라마구 소설의 여러 갈래 중 바로 『예수복음』 계열의 작품이다. 『예수복음』이 신약 성경 비틀기였다면 이번엔 구약 성경 비틀기. 카인을 빙자한 지극히 인간적인 시각에서 말이다.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라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는 게 좋다. 소설 속 여호아와 카인의 다툼을 건전한 신학논쟁으로 받아들이더라도, 불편해질 대목이 많다.

 소설은 하나님의 실수로 시작한다. 멀쩡히 아담과 하와를 빚어놓곤 목소리 장착을 잊은 것. 자책하며 분노에 휩싸인 하나님, 아담과 하와의 목구멍 안에 불쑥 자신의 혀를 밀어넣어 목소리를 줬다고 소설은 기록하고 있다. 정전(正典) 성경이 아닌 이른바 외전(外典) 성경에 그런 기록이 실제로 있는지 모르겠으나 소설은 이런 식으로 누구나 아는 일반적인 성경 상식 위에, 성경적 사실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얘기들을 천연덕스럽게 쌓아 올린다. 특히 소설의 카인은 시간 여행을 하는 운명을 타고났다. 물론 하나님의 저주에 의해서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칼로 내리치려 할 때, 노아의 방주 건설현장, 바벨탑 앞, 여리고성 함락 작전 등 성경의 유명한 이적(異蹟) 현장에 차례로 입회해 인간의 시각에서 기독교 교리, 신의 논리를 문제 삼는다.

 핵심은, 모르는 게 없고 못할 일이 없는 하나님이 어째서 질투에 사로잡힌 카인이 동생 아벨을 쳐죽일 때 가만히 계셨느냐는 점이다. 자유의지로 선과 악 가운데 악을 택했으니 마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하나님에 맞서 카인은 도둑질 망보는 자도 같은 도둑이라며, 자신이 살인을 할 줄 알았으면서도 지켜보기만 했다고 하나님을 비난한다.

 거침없는 기독교 교리 비판을 통해 사라마구가 노린 또 하나의 과녁은 인간성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다. 어쩌면 그게 소설의 궁극적인 메시지인지도 모르겠다. 종교가 인간의 창안(創案)이라면, 종교의 이름으로 끊임없이 행해지는 세상 모든 폭력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인간 자신에게 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S BOX] 카인의 삶, 소설에서는 19금

구약 성경에서 카인에 관한 기록은 한 쪽을 넘지 않는다. 동생 아벨을 죽인 대목은, 하나님이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자 카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했고 “둘이 있을 때 카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였다고 건조하게 기록했을 뿐이다. 소설에서는 다르다. 아벨이 으스대며 형을 조롱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선택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선언 해 카인이 놀라고 당황했다고 썼다.

  또 성경에는 카인이 동생을 죽인 후 에덴의 동쪽 놋땅에 거주하다 아내와 동침해 아들 에녹을 낳았다고만 돼 있다. 소설에서 카인은 절륜한 정력의 소유자다. 살 곳을 찾아 헤매다 아내 릴리스를 만난다. 발기와 발기 사이, 사정과 사정 사이의 간격이 의미 없는 나날을 보낸다. 이 대목에서 소설은 ‘19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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