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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선에서 길을 찾은 유럽 모더니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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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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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 선禪에게 길을 묻다
글·그림 윤양호, 운주사
280쪽, 1만5000원

네모 캔버스에 까만색 원(圓) 하나가 떠 있다. 오래, 고요히, 바라본다. 원이 말을 걸어온다. 사람에게 영혼이 있듯 저 동그라미 속에도 혼이 있다. 원의 형상은 모든 기(氣)가 만나는 집합이다. 윤양호(50) 원광대 선조형예술학과 교수는 원을 통해 우주만물의 진리를 관조하고 예술적 가치를 얻을 수 있었다. 20년 전 독일에 유학 가서 만난 선(禪)은 그동안 자신이 지녔으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동양적인 정신성을 재발견하는 통로가 됐다.

 『현대미술, 선에게 길을 묻다』는 그 여정에서 탄생한 ‘선조형예술’이라는 새 사조를 개척하면서 변화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은 안내서다. 유럽에서 ‘제2의 모던(Zweite Moderne)’이라 불리는 선과 현대미술의 새로운 관계 트기가 국내외 여러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펼쳐진다. 선과 예술이 같은 길을 걸으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도반(道伴)이라고 그는 믿는다.

 지난해 국제미술시장에서 주목받은 한국의 단색화(單色畵)를 선과 연결 지은 서술이 눈에 띈다. 윤형근·박서보·하종현·이우환 등의 작품세계를 해설하며 그는 단색화의 시대성을 평가한다. “50여 년을 진행해온 단색화의 특성을 분석해 볼 때 선의 정신성과 수행자의 모습이 그들의 작품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은 예술이 선과 공통적인 요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231쪽)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1932~2006)과 선을 언급한 대목도 흥미롭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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