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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인천 A양’은 ‘진정한 가족’이 고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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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최모란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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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모란
사회부문 기자

학대를 피해 지난 12일 인천시 연수구의 2층 빌라를 탈출한 A양(11)은 배가 고팠다. 그래서 향한 곳이 수퍼마켓이었다. 안간힘을 써서 봉지를 겨우 뜯고 힘겹게 과자를 씹으면서도 바구니에 빵과 과자를 가득 담았다.

 그러나 A양을 학대한 아빠 B씨(32)와 동거녀(35) 등이 키우던 강아지는 달랐다. 경찰에 따르면 굶주린 A양과 달리 강아지는 살이 포동포동 찐 상태였다.

 동거녀 등은 경찰에 붙잡힌 순간에도 “잘 있느냐”고 강아지 안부를 먼저 물어볼 정도로 그들에게 애견이 더 중요한 ‘가족’이었다. 반면 A양은 가족이 아니라 “꼴도 보기 싫은” 존재였다. 그래도 A양은 그들을 ‘아빠’ ‘새엄마(동거녀)’ ‘고모’라고 불렀다고 한다.

 A양이 경찰에서 ‘행복했던 기억’에 대해 진술한 내용을 취재 중에 들었다. “예전에 아빠랑 새엄마랑 부천에서 살았을 때는 같이 공원에도 놀러 가고 식당에 가서 고기도 먹고 그랬어요.” 그러나 A양이 느낀 평범한 행복은 너무 짧았다.

 말로는 표현 못할 학대가 계속되면서 아빠와 새엄마는 A양이 두려워하고 경찰에 “처벌해 달라”고 요구할 정도로 심각한 범법자가 돼버렸다. 경찰이 사건 발생 초기에 ‘부천에 살 때의 작은 행복’이라도 A양에게 다시 되돌려 주고 싶었지만 이제 그런 계획을 접지 않을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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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석]

 세 살 무렵 헤어진 A양의 친엄마는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 과거를 숨기고 새 삶을 살 수도 있어 경찰도 더 이상 적극적으로 연락하지 못하고 있다.

 친할머니와 삼촌도 아이를 키울 형편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혹시 친족들이 재판을 유리하게 몰고 가기 위해 A양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아동 전문가의 조언도 한몫했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은 검찰이 B씨에 대한 친권상실 청구 절차를 밟는 만큼 지자체장이나 아동보호기관 관장 등을 A양의 임시 후견인으로 지정해 아이를 돌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A양이 제대로 된 ‘진정한 가족’을 찾기까지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측은 설명한다.

 먼저 친권상실 결정이 나오기 전까진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절차도 복잡한 데다 판결 결과를 B씨 등이 수용하지 않으면 대법원까지 가야 한다. “A양을 돕고 입양·위탁하고 싶다”는 문의와 정부의 관심이 그때까지 지속될지도 의문이다. 이광호 경기대 청소년학과 교수는 “가족에 의해 불행을 겪은 다른 아이들도 많은 만큼 이번 사건에 국한되지 말고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천 A양 사건으로 우리 사회가 짊어져야 할 숙제는 지금부터다.

최모란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