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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의 직격 인터뷰

"안철수 탈당은 안 돼…중도·진보 구분은 호사가들 말장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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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오종택
오종택 기자 중앙일보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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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지사는 2년 뒤 대선 출마설에 대해 “지금은 문재인·박원순 등 유력 주자들을 응원하는 상황”이라고 피해 가면서도 “슛을 날려야 할 포지션에 서면 공을 찰 것”이라 덧붙여 여운을 남겼다. [오종택 기자]

 안희정 충남지사는 친노(親盧)계 핵심 인사였다. 연임에 성공한 데다 호남에서도 호감층이 많아 차기나 차차기 대선에서 야권 유력 주자로 지목돼왔다. 그러나 그동안 안 지사는 여의도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도정(道政)에 집중하며, 계파색 탈색에 주력해왔다. 하지만 친정인 새정치민주연합이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공중분해될 위기에 놓인 시점에서 만나본 그의 목소리는 달라졌다. 안 의원의 탈당을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 비판하고 “문재인 체제 아래 뭉쳐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 문재인 대표가 조기 선거대책위원회 구성과 내년 1월 말 사퇴 등 조건부 사퇴 의사를 비쳤지만 비주류는 ‘문 대표 우선 사퇴’를 요구하며 맞서고 있다.

야권의 다크호스 안희정 충남지사 #20세기식 낡은 진보·보수, 지역 구도 뛰어넘고 싶다

 “당원은 당 대표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전당대회에서 뽑힌 대표라면 따라줘야 한다. 그러자고 전당대회를 한 것 아닌가? 박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대통령으로 존중은 해야 한다. 대선을 다시 치르자고 할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 국가원수인 대통령과 당의 대표는 다르지 않나.

 “원리는 똑같다. 민주주의 원리의 첫 번째 근본은 대화와 타협이고, 둘째는 정해진 규칙에 대한 승복이다. 이를 깨면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없다.”

 - 그러면 안 의원이 지난해 민주당과 합당하고 대표를 지냈을 당시 친노들이 그를 흔들어 중도하차시킨 것은 어떻게 봐야 하나.

 “그때 안 의원은 민주당과 당 대 당으로 합당했다. 그 결과 새정치연합이 만들어졌지만 통합전당대회를 치러야 했다. (그래서 지난 2월 전당대회가 열린 결과) 새로운 (문재인) 체제가 들어선 것이다. 그러니까 (친노들이) 물러나게 했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다.”

 - 안 의원의 대표직 리더십이 잠정적인 것에 불과했다는 얘긴가.

 “그건 아니다. 그러나 어떤 결정이든 합의로 결정되면 따라야 하는 거다. 전당대회로 뽑힌 당 대표에게 조기 전당대회를 요구해도 대표가 못 치르겠다고 거부하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 그렇다면 합의로 대표직을 맡은 안 의원에게 물러나라고 압박한 친노들도 잘못 아닌가.

 “(물러나라고) 의견을 표시하는 것과 탈당하는 것이 같은가?”

 - 안 의원 탈당과 신당 창당을 반대한다는 뜻인가.

 “모든 것은 상식에 기초해야 한다. 싸우지 말고 대화로 타협하는 게 첫 번째 상식이다. 두 번째 상식은 규칙이 있으면 따르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거다. 지난 2월 전당대회를 통해 대표를 뽑았으면, 이견이 있어도 대표와 대화해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그래도 결론이 안 나면 그때는 지도체제를 존중해야 한다.”

 - 안 의원의 탈당은 그래서 잘못이란 것인가.

 “그렇다. (불만이 있으면) 당헌당규에 따라 중앙위원회를 소집해서 얘기를 했어야 한다.”

 - 하지만 안 의원의 탈당에 이어 호남권 의원들의 탈당이 이어지고 있다. 김한길 의원도 탈당설이 파다하다.

 “야당은 김대중·노무현 지지층과 청년세대를 흡수해 발전해야 한다. 탈당·신당은 도움이 안 된다. 단결해야 한다. 견해는 어차피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대화로 이견을 좁히려 노력하되 결론이 안 나면 다수결에 승복하는 게 민주주의다. 국가로 치면 선거 때 민심, 당은 전당대회다. 이를 뛰어넘을 권위 있는 의사결정구조는 없다.”

 - 문 대표를 지도자로 뽑은 2월 전당대회의 합의를 존중하라는 얘기인가.

 “모든 정당인은 전당대회의 결론을 뒤집으려 하면 안 된다. 이견이 있으면 다음 전당대회에 도전하면 된다.”

 - 하지만 문 대표는 진보, 안 의원은 중도다. 둘의 차이가 워낙 크니 갈라서는 게 맞다는 목소리도 높다.

 “나는 두 사람 간에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다. 중도니 진보니 하는 구분은 호사가들의 얘기일 뿐이다. 내가 볼 때는 둘이 별 차이가 없다.”

 - 두 사람이 합쳐 ‘도로 새정치연합’으로 총선을 치르면 여당과 극한적 대결정치가 재연될 뿐이란 비판도 많다. 제3당의 국회 입성으로 다당제가 정착돼야 정치가 합리화될 것이란 주장인데.

 “다당제가 되려면 결선투표제나 중선거구제로 가야 한다. (그렇게 선거법을 바꾸면 될 것 아닌가?) 지금 여야가 그런 장기적 차원의 논의를 할 만큼 평화로운 상황이 아니다. 야당도 난리지만 여당도 친박과 비박이 죽자 사자 싸우는 코미디 같은 처지 아닌가.”

 - 정치인 안희정은 중선거구제에 찬성하나.

 “좀 더 깊은 동의가 필요하다. (반대한다는 건가?) 우리 사회가 아이디어 몇 개만 갖고 목소리를 높이지 말았으면 한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우선 민주주의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건가에 집중해야 한다.”

 - 내년 총선에서 논산-금산에 출사표를 던진 한 야당 후보는 ‘안희정 대통령 만들기’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지방선거 출마 당시 ‘지역주의 정치를 극복하고, 실력과 철학을 쌓은 뒤 기회가 되면 대선에 도전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런 만큼 이런 포부를 함께해 주겠다는 동지가 생겼으니 기쁜 일이다.”

 - 그러면 다음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생각인가.

 “그건 다 때가 있는 것 아닌가 싶다. 때가 되면 감이 떨어진다.”

 - 문재인 대표가 위기를 맞았고 당도 위기다. 감이 익을 만한 상황이 아닌가.

 “지금 당에는 문 대표도, 박원순 서울시장도 있고 비록 탈당했지만 안 의원도 있다. 정치는 축구와 비슷하다. 나보다 포지션 좋은 곳에 우리 편이 있으면 그가 슛할 수 있도록 공을 패스해주는 것이 정치다. 다만 살다 보면 자기가 슛하지 않으면 안 되는 포지션에 가 있을 때가 있다. 그때는 (내가) 슛해야 한다.”

 - 그러면 지금 문 대표는 포지션이 어렵지 않나? 안 지사가 슛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 있는 것 아닌가.

 “아직은 모르겠다. 다들 노력하고 있으니 나는 응원하는 입장이다.”

 - 같은 충청권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대선 출마설에 대해선.

 “훌륭한 분들이 전부 정치권에 와 지도자가 되는 건 불행한 사회다. 우리 사회는 훌륭한 기업인·과학자·외교관 등등이 떠받치고 있다. 이들이 전부 정치권에 들어와 진흙탕 싸움으로 명예를 훼손당한다면 국가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 또 유엔 사무총장 하시는 분을 국내의 정치 사정에 따라 휘몰이하는 것도 좋지 않다고 본다. 마이클 조던이 농구를 잘한다고 전미골프협회가 픽업하는가? 타이거 우즈가 골프 잘 친다고 전미농구협회(MBA)가 픽업하나? 전문성과 신망을 가진 우리 사회의 자산을 정치권에서 오염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 안 지사는 문 대표와 달리 호남에서도 팬이 많은데.

 “나는 20세기식 낡은 진보·보수 구도를 뛰어넘고, 영호남·충청 가릴 것 없이 정책과 소신으로 지지받고 싶다.”

 - 친노 폐족론을 제기해 화제가 됐었다. 지금도 친노로 시끄럽다.

 “실체가 없이 굉장히 오염된, 정치적 단어다. 야권을 분열시키려는 단어다. 김대중과 노무현 지지자들은 한 몸인데 이를 분열시키려는 단어다. 그래서 나는 사용하고 있지 않다. (친노는 사라진 것인가?) 참여정부와 함께 역사적 사명을 다한 단어다.”

 - 도지사로서 5년 반을 지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도민들에게 재신임을 받았다. 물질적 성과만이 아니라 행정의 공정성·합리성을 추구한 것이 도민들의 마음을 산 것 같다. 나는 이걸 ‘신뢰의 자산’이라 부른다.”

 - 그런데 안 지사는 공정성을 너무 따지는 바람에 가시적 성과는 부족하다는 비판도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게 경제적 효율성도 높인다. 이명박(MB) 대통령이 4대 강 사업을 밀어붙일 때 나는 받아들였다. 이어 금강을 낀 충남도의 수장으로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더 좋은 금강 발전 전략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대화조차 거부했다. 이처럼 중앙정부는 딱딱했지만 나는 가뭄 극복이 먼저라는 실사구시 정책을 폈다. 그 덕에 도민들의 신뢰를 얻었다.”

 - 이를 두고 안 지사도 MB의 4대 강 사업이 이로운 것이라고 인정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웃으며) 4대 강은 MB의 전유물이 아니다. 역대 모든 정부가 4대 강 사업을 해왔다. 4대 강 수질이 개선됐다면 역대 정부의 노력 덕분이다. 이를 두고 내가 MB가 잘했다고 인정했다고 강변하는 건 황당한 논리다. 우리 사회는 법과 규칙 같은 원칙으로 풀어야 할 지역개발 문제까지도 ‘환경주의자냐? 개발주의자냐?’ 같은 진영 논리로 싸우기에 아무 실익이 없다. 그런 만큼 지도자는 양심과 민주주의, 그리고 법과 원칙 간의 균형 속에서 행정을 펴야 한다. 양심만 갖고 밀어붙이면 근본주의가 되고 정파성만 갖고 돌파하려 하면 민주주의가 깨지며, 법을 무시하면 법치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 법과 절차를 중시하는 것은 좋지만 가시적 성과가 부족하면 표가 날아가지 않나.

 “오히려 정치인들이 임기 내에 무리하게 성과를 내려고 하면 나라에 악영향을 미칠 뿐이다. 요즘은 보여주기 식의 토목공사를 벌이면 유권자들이 다 안다. 지도자는 역사로 평가받아야지 임기 내에 또는 생전에 평가받으려 하면 안 된다.”

 - 본인은 도지사로서 역사적으로 평가받고 싶은 업적이 무엇인가.

 “지방정부를 민주주의적으로 운영한 지사로 기억되고 싶다.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공약으로 경제성장률을 들고나오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시장은 순환사이클이 있는데 인위적으로 경제를 키우면 무리가 온다. 유권자들도 이젠 수치 대신 삶의 질을 원한다. 따라서 정부의 역할도 모든 국민에게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돼야 한다.”

 - 정부와 서울시가 누리과정 예산을 놓고 충돌해 난리가 났다.

 “충남도 마찬가지다. 6개월 뒤면 재정이 바닥날 우려가 크다. 박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 자신의 공약이었지 않나. 이걸 지자체에 떠넘긴 것은 무책임하고 부도덕하다. 일부 언론에서 서울시도 공격하는데 이 역시 부당하다.”

 - 박 대통령이 충남을 찾을 때 대화를 나누나.

 “2년 전 박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계룡대에서 열린 삼군사관학교 임관식에 참석했다. 그때 내가 ‘도청 청사 개청식이 곧 열리는데 한번 오시라’고 했더니 ‘한번 가겠다’고 답하시고 오시더라. 이런 정도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도지사들과 만남을 자주 가졌다. 한번 만나면 반나절을 넘기기 일쑤였다. 그러더니 MB 때는 만남이 1년에 한 번으로 줄었고 박 대통령은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한 번도 없었다.”

 - 대통령과 지자체장의 관계는 어때야 한다고 보나.

 “‘너는 얘기해라, 나는 들어주겠다’ 식의 갑을 관계여선 안 된다. 대등한 국정의 파트너로 만나야 한다. 지사가 ‘우리 도의 숙원인 경제자유구역을 지원해달라’며 부탁만 해서도 안 된다. 그런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대북·대외정책을 바꿔달라고 건의할 수 있어야 한다. 충남에 철도를 깔아도, 대한민국 전체 물류 기반을 고려해 어디에 얼마만큼 깔 것인지 대통령과 도지사가 토론해야 한다. 우리 정치인들은 자기 지역구에 무조건 예산을 많이 유치해 철도 깔겠다고 공약을 남발한다. 이렇게 효율성 대신 정치 논리로 나가면 혈세가 날아가고 국가 재정이 유실된다.”

강찬호 논설위원
사진=오종택 기자

안희정 충남지사는…

▶충남 논산(51) ▶남대전고, 고려대 철학과 졸업 ▶노무현 대통령 후보 대선 캠프 사무국장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소장 ▶민주당 최고위원 ▶민선 5·6기 충남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