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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환영의 직격 인터뷰

소설 ‘이승만’ 연재 시작한 작가 복거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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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김환영 기자 중앙일보 실장
신인섭
신인섭 기자 중앙일보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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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작가는 이번 소설 ‘이승만’ 연재에 어렸을 때부터 공부해 온 역사 지식을 총동원할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 관련 문헌을 읽으면 그의 심리가 읽힌다”고 말한다. [신인섭 기자]


 우남(雩南) 이승만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다. 건국이냐 정부 수립이냐 하는 논란도 있지만 어쨌든 그는 움직일 수 없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이다. 독립운동, 건국, 경제발전 토대 마련 등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생애 마지막의 10년 독재가 그의 90년 인생 전체를 삼켜버렸다. 그는 비난 이전에 망각의 대상이다. 이 대통령의 본모습을 대중에게 알리기 위해 보수 논객으로 유명한 복거일(69) 작가가 월간중앙 2016년 1월호에 소설 ‘이승만’ 연재를 시작했다. 광복에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까지의 과정을 3년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를 따진다면 공이 9.5 과가 0.5”

-초·중·고 시절에 대통령은 오로지 이승만 박사였나.

 “이승만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릴 때 그 모습을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차이가 있다. 친근감 면에서 또 ‘저분이 있어야 나라가 유지된다’는 신뢰감에서 차이가 난다.”

 -4·19 때 고등학생들도 데모를 했는데.

 “저도 데모했다.(웃음) 데모는 데모대로 하고.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칭찬할 때는 칭찬하고 욕할 때는 욕하고.”

 -이승만은 어떤 사람이었나.

 “제 방식으로 표현한다면 우남은 평생 ‘협박’을 하고 산 사람이었다. 그분은 협박의 천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식이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게 옳다고 확신한다. 당신이 내 말을 반박해 봐라. 반박 못하겠으면 선택하라. 나를 꺾기 위해 큰 비용을 치를 것이냐. 나와 협력할 것인가 나를 밟고 갈 것인가’. 미국 사람들에게 잘 통했다. 미국인은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계산이 빠른 문화다. 대표적인 예가 반공포로 석방이다. 결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우남과 타협했다. 낙동강 전선까지 밀리자 미군 장성들이 흔들렸다. 그는 대만의 경우처럼 제주도로 옮기는 척하며 미국을 협박했다. 또 그는 진정한 애국자였다. 그는 질량(mass)이 매우 큰 분이었다.”

 -작품 세계에서 이번 소설이 갖는 의미는.

 “이게 제 마지막 작품이 될 것 같다. 고칠 수 없는 큰 병을 얻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제발 좀 병이 더디게 진행돼 작품을 마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기약할 수 없다. 그래서 우남 묘소를 참배했다. 마침 벚꽃이 졌다. 마음이 울컥했다. 이렇게 말씀드렸다. ‘제가 각하 일생을 소설로 담으려고 합니다. 아무리 둘러봐도 대한민국에 그 작업을 할 사람이 저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기로 했습니다. 각하 인생을 담으려면 아무리 짧게 잡아도 3년이 걸립니다. 제가 제 힘으로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은 한 해밖에 안 됩니다. 나머지 두 해는 각하께서 책임지십시오’. 이렇게 협박했다. ‘내 수법을 써먹느냐’ 하며 각하가 웃으셨을 것이다. 첫 실명 소설이다. 그런 소재를 원래 안 다룬다. 하지만 하도 그분이 폄하 정도가 아니라 오욕을 뒤집어써서 오욕을 좀 거둬낸다는 의미에서 나서게 됐다. 전기로 다룬 경우는 있으나 최초의 본격 소설이다. 전기 작가가 어찌할 수 없는 틈(lacuna)을 ‘소설적인 진실’로 메울 수 있다. 이 점에서 소설을 따를 수 없다. 설이 여러 가지가 있을 때 전기 작가는 소수 설까지 일일이 나열해야 한다. 소설은 그럴 필요 없이 일관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우리가 우남에 대해 알면 알수록 감탄하게 되는데, 제가 작가니까 다른 사람들과 다른 면을 본다. 그분의 심리를 읽고 빙그레 웃을 때가 있다. 우남의 생각의 결이 보인다. 실용적인 차원에서도 재미있는 책이 될 것이다. 우남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은 다 나와 있다. 독자들이 같이 웃고 분노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허구가 들어가면 ‘미화시켰다’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까.

 “우남의 경우는 적이 많아 제가 아무리 공정하게 써도 비난이 나올 것이다. 문단에서 제게 가하는 타격이 클 것이다. 제가 겪어봐서 안다. 전체 문단의 공적이 돼 아직까지 공격받고 있다. 하지만 이제 국민이 성숙했기 때문에 우남을 긍정적으로 다룬 소설이 나올 때가 됐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원숙해졌지 않았나.”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치밀한 연구·조사가 필요한데 새로 발견한 게 있다면.

 “잘 안 알려진 면 중 하나는 시장경제에 대한 그의 신념이다. 왕조 시대의 농업경제, 일제강점기의 통제경제에 대해서만 친숙했지 당시 시장경제에 대해 아는 사람은 글자 그대로 한 사람도 없었다. 그로 말미암아 시장경제의 토대가 놓였다. 원자력 연구 지시, 교육 사업, 농지개혁 같은 우남의 선견지명 있는 정책으로 5·16 이후 5~6년 만에 경제가 급성장하게 됐다.”

 -공과(功過)는 7대 3 정도로 보면 되나.

 “9.5대 0.5라고 생각한다. 이승만 대통령을 미워하고 평가절하하는 이유는 우리가 진실이 있는데도 못 바라보는 까닭이다. 독립운동 이야기는 빼더라도 그는 건국의 아버지였다. 6·25 때 이승만이 있었기에 안 무너졌다. 그것만 해도 대단하다. 그분에 대한 평가가 잘못되면 우리나라 역사가 뒤틀린다.”

 -그렇다면 0.5%는 뭔가.

 “나이가 너무 많았다는 게 문제였다. 신격호 회장같이 뛰어난 기업가도 나이가 드니 어떻게 됐는가. 우남은 70세였던 1945년에 귀국했다. 보통 은퇴할 나이였던 것이다. 노쇠해서 아랫사람들을 통제하지 못했다. 대통령 선거도 무투표 당선이었기 때문에 부정선거를 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다 이룬 사람이었다. 부통령 선거가 문제였다. 워낙 뛰어난 분이었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못 믿었고 자신의 후계가 안 보인다는 함정에 빠졌다. 이분이 노쇠하게 됐을 때 범한 사소한 잘못이 그의 위대함을 가리고 있다.”

 -부정선거, 양민학살, 측근 부패 같은 논란의 여지 자체가 없는 과오가 있다는 평가도 있다.

 “아직 도덕이 서지 않고 인프라가 하나도 없는 신생 국가에서 어떻게 한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물을 것인가. 미군처럼 군기가 엄하고 민간인들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도록 단속하는 군대가 없다. 하지만 베트남전에서 미라이 학살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나. 사건의 책임을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뒤집어 씌울 것인가. 평시에도 지도자가 다 알고 있을 수는 없다. 전쟁 중에는 더더욱 군대 일은 모른다.”

 -프란체스카 여사에 대한 내용은.

 “이승만이 없었으면 대한민국이 없었고 프란체스카가 없었으면 이승만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한번은 어느 경상도 할머니가 떡을 가지고 이화장을 찾아와 ‘호주댁 보이소’ 하니까 ‘호주댁은 무슨 호주댁, 나는 한국댁인데···’라고 했다는 말이 전한다. 남편의 독립운동을 돕기 위해 손가락이 짓무르도록 타자를 쳤다. 한때 저는 프란체스카 여사를 주인공으로 이승만을 간접적으로 말하는 뮤지컬을 구상하기도 했다.”

 -건국이냐 정부 수립이냐는 문제가 있는데. 건국은 단군왕검이 하신 것 아닌가.

 “좌파·우파 사이에서 싸움이 심각해지면서 양쪽 다 굉장히 이 문제를 중시한다. 제 생각에는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차이도 별로 없다. 정말 중요한 논의를 안 하고 있다. 제가 우파니까 우파 입장에서 말하겠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깎아내리려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북한은 건국이고 남한은 정부 수립이다. 속이 뒤집히는 일이다. 아이들도 ‘북한이 뭔가 제대로 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 것은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또 이미 건국한 상태라면 ‘독립운동’이라는 이름을 왜 붙이는가.”

 -스스로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면.

 “저는 ‘지식의 지도 제작자’다. 지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사람이다. 그런 지식인이 드물다. 해박한 지식이 중요한 게 아니다. 또 저는 사회의 정서를 따르는 사람이다. 즉 보수다. 보수주의자는 아니다. ‘풍속적 자유주의자’이기도 하다. 사회에 해가 안 된다면 동성애·매매춘·춘화·마약도 허용해야 한다고 본다. ‘생태적 자유주의자’이기도 하다. 저는 다른 종들에 대해서도 인간이 후견인(guardian)이 돼야 하며 앞으로 로봇과도 공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저는 개인의 가치를 높인다. 사회적 가치를 높인다고 하면 프로파간다가 된다.”

 -선생에 대한 최대의 오해가 있다면.

 “오해는 오해이기 때문에 풀 수가 없다. 오해가 아니라 악의적인 경우도 있다. 댓글로 약 올리려는 사람들도 있다. 별의별 욕이 다 나온다. 하지만 별로 약 안 오른다.”

 -회사를 다니다 전업 작가가 되려고 83년 그만뒀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좀 무모하지 않았나.

 “제가 좀 무모하다. 첫 작품을 발표하는 데 4년이 걸렸다. 출판이 될지 또 팔릴지 기약이 없었다. 원래는 시인 지망생이었는데 이 시대는 시가 아니라 구호를 바란다는 것을 깨닫고 소설가가 됐다.”

 -국론 분열이 심하다. 중도파가 많아지면 문제가 덜해질까.

 “이념에서 중도적인 것은 없다. 자신이 중도적이라는 말하는 것은 ‘나는 관심 없다. 그게 그거다’라는 뜻이다. 좌우 한쪽에 서야 한다. 자본주의와 자본주의를 깨트리려고 하는 사회주의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사회에는 정설이 있고 이설이 있다. 정설을 따라야 한다. 지금 문제는 좌우 양쪽에서 극단주의자들이 설친다는 것이다. 좌파 극단주의는 DJ·노무현 대통령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한다. 우파도 지나친 얘기가 많다. 예컨대 유신을 미화하는 것이다. 어떻게 유신을 칭송할 수 있나.”

 -충남 아산 출신인데 ‘충청도 대망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저는 이념적으로는 우파, 지역적으로는 비영남에서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다. ‘영남 좌파’는 최악의 조합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공과가 어떻게 되나.

 “7대 3이다. 이승만 대통령과 달리 그에겐 JP라는 대안이 대기하고 있었다. 매끄러운 승계가 가능했다.”

 -우리나라 야당을 유럽에 갖다 놓으면 좌파가 아니라 중도우파라는데.

 “DJ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사회주의자가 아니고 공산주의자는 당연히 아니다. DJ는 우리 정치사의 통과의례였다. 대통령 한번 하실 분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이 민주화 과정에서 DJ에게 역할을 줬다는 점에서 노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유분방한 성격상 좌파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참모 중에는 또 모른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과 46년생 동갑이다. 저도 상고를 나왔다. 그래서 상고 출신이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을 잘 안다. 우리나라는 고등학교 동문회가 다 ‘잡아먹는다’고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호감이 가는 인물이다. 한데 공부를 안 하셨다. 지적 훈련이 덜 됐다는 게 아쉽다. 저는 우리 야당이 왜 왼쪽에 울타리를 안 치는지 모르겠다. 몰아내야 한다. 몰아내지 않고서는 집권이 어렵다. 물론 좌파가 집권하면 좋은 점도 있다. 좌파가 오히려 우파적인 개혁을 쉽게 하는 경우도 많다.”

 -사회주의의 문제는.

 “허울만 좋은 문제(specious problem)를 만든다는 점이다. 필요 없는 문제, 풀리지 않는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복거일은…
1946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다. 소설가·시인·시사평론가다. 서울대 상과대학 상학과를 졸업했다. 87년 첫 소설 『비명을 찾아서』를 발표했다. 한국적 과학소설(SF)의 지평을 연 작가로 손꼽힌다. 봉건주의·포퓰리즘을 비판하며 ‘열린 민족주의’를 주창한다.

김환영 논설위원
사진=신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