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모비우스의 시대공감] 기로에 놓인 말레이시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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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말레이시아가 신념의 위기를 맞았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말레이시아 통화인 링깃이 90년대 말 아시아 금융위기 당시의 수준으로 약세를 보였고, 주식시장도 정치 스캔들과 대외적인 쇼크 속에서 하락했기 때문이다. 통화와 주가 하락 모두 과장된 것으로 보이며, 장기 투자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요인일 수 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남는다. 최근 말레이시아의 총리 겸 재무장관인 나집 툰 라작이 공개한 내년 예산안이 이 의문을 풀기 위한 단서를 준다.

링깃화 약세, 부패 스캔들 악재에
유가 하락, 미 금리 인상 겹쳐
중산층 늘고 인구 구조도 젊어
'근본적 변화' 통해 장기 성장 기대

말레이시아 정부는 2016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4~5%로 둔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지출을 축소하는 한편 부가가치세인 정부세를 통해 저유가에 따른 재정 악화에 대비했다. 재정 적자는 2016년 GDP의 3.1%에 그칠 전망이다. 만약 말레이시아가 채권 평가업체의 신용등급 하향 조정을 피할 수 있다면, 이런 조치의 덕일 것이다.

인프라 지출은 소폭 늘어날 것으로 보이고, 이는 건설 산업의 수혜로 이어질 전망이다. 또 여행 산업에 추가적인 자금 투입에 나설 계획이다. 링깃화가 저평가 됐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부동산 과열을 막기위한 정책들도 유지해 경제에 재앙이 될 수 있는 잠재적인 버블을 가라앉히려 노력하고 있다. 올해 정부세를 도입했지만, 주류제조·담배·게임 분야의 세금은 올리지 않았다. 전반적으로 말레이시아는 저조한 경제 상황을 헤져나가기 위해 적자 관리에 중점을 두고 예산안을 편성한 것이다.

원자재 수출국인 말레이시아는 글로벌 경제 침체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14년 이후 원유가격이 폭락하면서 말레이시아는 타격을 입었다. 일부 언론에서 말레이시아의 상황을 심각한 수준으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 경제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고 수익 원천도 과거보다 다각화됐다. 올해 다양한 지표들이 하락했지만 외환 보유고는 여전히 높다.

신중한 재정 정책에도 불구하고 말레이시아 정부는 경제에 대한 국민들의 확신과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을 되찾아야 한다. 몇몇 보고서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정부는 폭락한 일부 주식에 4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는 정부 소유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주요 국부 펀드도 나섰다. 물론 새롭거나 독특한 방식은 아니지만, 정부의 금융시장 개입은 불확실성을 고조시키는 경향이 있고, 외국인 투자자들을 주저하게 할 수 있다.

말레이시아의 장기 경제 성장을 지원하기 위해 총리가 설립한 원말레이시아개발사업(1MDB) 관련 부패 스캔들도 문제가 되고 있다. 불행히도 약 7억 달러의 자금이 1MDB에서 유용된 의혹이 있다. 1MDB는 부인하고 있고 라작 총리는 거래가 완벽하게 투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세계 신문 지면을 도배했던 관련 뉴스는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왔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언론의 자유다. 정부가 특정 신문과 온라인 미디어를 폐쇄하려는 시도를 말레이시아 고등법원이 막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지속적인 양적완화와 해외 직접투자는 말레이시아를 포함한 아세안 국가들에 호재다. 일본은 자본과 기술 인력을 파견해 아세안 국가에 공장을 건설·운영하고 있다. 태국의 자동차 산업처럼 긍정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 해외투자 수익률이 일본에 투자하는 것 보다 훨씬 높게 유지되는 상황에서 이런 추세는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다.

말레이시아와 아세안 국가들의 경제에 또 다른 긍정적인 요인은 중산층의 급증과 젊은 인구 구조에 힘입은 소비 시장의 확대다. 우리 운용팀은 말레이시아 주식에 투자할 때 장기적인 성장세가 기대되는 소비재 관련 주를 선호한다. 성장 잠재력이 있는 소규모 기업도 선호한다.

이같은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단기적인 자금 흐름은 주시해야 할 문제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에 따라 시장의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이처럼 말레이시아 경제의 내부적인 문제들과 미국의 금리 인상에서 파생된 일반적인 불확실성은 단기적으로 말레이시아 경제에 어려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추세는 긍정적으로 보인다. 특히 악재로 작용한 일련의 정치·경제 스캔들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말레이시아가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점이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말레이시아 국민들도 개혁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고 있다. 말레이시아가 단기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정치·경제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계속해서 지켜보고 싶다.

마크 모비우스 템플턴 자산운용 이머징마켓그룹 회장

#모비우스#말레이시아#라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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