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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주한미군의 불투명한 탄저균 실험 더 이상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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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주한미군이 지난 4월 탄저균을 반입할 때 페스트균 샘플도 함께 들여온 게 확인됐다. 또 서울 용산기지에선 탄저균 실험을 15차례나 실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모두 충격적인 소식이다. 페스트균 반입은 한·미 합동실무단의 조사 결과 처음 밝혀졌다. 주한미군은 지금까지 이런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탄저균 실험이 수년에 걸쳐 반복적으로 이뤄졌다는 건 “탄저균 실험이 올해 처음”이라던 주한미군사령부의 발표를 뒤집는 것이다. 주한미군이 축소·은폐하고 거짓말까지 했다는 뜻이다.

 문제는 이런 사실마저 미국 측 제공 자료에 의존해 더 이상의 심각성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보안을 이유로 미군이 공개를 거부한 정보엔 한·미 양국 합동실무단이 접근하지 못했다. 조사에 대한 미국 측 거부감 탓에 명칭 자체가 공동조사단이 아닌 공동실무단이 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사정이 이러니 용산기지로 배달된 탄저균 샘플의 양과 구체적 배달 시점, 정확한 반입 목적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탄저균과 페스트균이 전부일 뿐 또 다른 위험물질 반입은 없었다는 설명도 현재로선 믿기 어렵다.

 한·미 두 나라는 향후 검사용 샘플에 대한 통보, 관리 절차 개선을 약속했다. 당연한 일이다. 생물학 무기가 될 수 있는 병원균의 반입 여부조차 파악하지 못한다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치명적 영향을 미치는 위험 통제를 못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런 비정상적이고 불평등한 정보 공유 시스템은 한·미 동맹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가장 큰 문제는 투명성이다. 주한미군이 탄저균으로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우리 정부는 눈으로 확인하는 조사조차 못하고 있다. 이래서는 주권 국가라고 할 수 없다. 불투명한 주한미군의 생물학 무기 실험엔 두 나라 전문가가 일상적으로 검증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미국이 모든 관련 정보를 우리 쪽에 제공하고 실험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게 출발선이다. 만일 제3국으로부터 미국 내에 살아 있는 탄저균이 보내졌다면, 또 탄저균 실험이 수년간 계속됐다면 미국 정부는 어떻게 대응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