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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과정 예산 돌려막기 … 교직원 인건비 줄여 땜질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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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누리과정(3~5세 무상교육) 어린이집 예산 배정을 둘러싼 정부와 시·도 교육청의 대립이 정부와 지방의회, 지방의회와 교육청의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서울·전남 등 야당이 다수당인 지방의회는 교육청이 편성한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까지 삭감했다. 누리과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만큼 모든 책임은 중앙정부가 져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여당이 다수당인 시·도의회는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을 삭감해 이를 어린이집 예산으로 돌리고 있다.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보육정책이 교육감이나 지역 정치권 성향에 따라 오락가락하고 있다.

지자체의 어린이집 예산 배정
교육감·지방의회 성향 따라 제각각
내년 4조 필요 … 정부 3000억만 보조
“국고 지원 없으면 보육대란 불가피”

 전남도의회 예결위는 15일 도교육청이 편성한 유치원 누리과정 교육비 482억835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조상래 도의회 예결위원장은 “정부가 부담해야 할 보육 예산을 열악한 지방재정으로는 감당할 수 없다”며 “누리과정 예산은 전액 정부가 편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9일 광주광역시의회 예결위도 유치원 예산 598억원을 없앴다. 서울시와 경기도의회도 지난 8일과 지난달 30일 각각 2521억원과 4929억원의 유치원 누리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반면 전북도의회는 교육청이 편성한 유치원 누리 예산 691억원을 그대로 승인했다.

 이들 지역 교육청 예산이 의회 본회의에서 확정되면 내년에 보육대란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경기도교육청 조대현 대변인은 “국고에서 지원해주지 않는 한 보육대란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 모두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을 짰다. 하지만 어린이집 누리과정 부분은 보수 성향 교육감이 있는 대구·경북·울산 교육청 세 곳에만 포함돼 있다. 13개 교육청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꾸리지 않았다. 경남은 어린이집 지원액 1444억원을 교육청이 아닌 도청이 대신 편성할 계획이다. 내년 전국 누리과정 예산은 약 4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 가운데 3000억원만 지원하겠다고 했다.

 여당이 다수당인 인천과 강원, 충청권 지방의회는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을 쪼개 어린이집 예산으로 편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진보 성향의 교육감은 반발하고 있다.

 인천시교육청 김진철 대변인은 “시의회가 교육청 동의 없이 예산을 편성한 것은 명백한 교육자치 훼손 행위”라며 “16일 예정된 본회의 의결 상황을 지켜본 뒤 재의 요청 등을 할지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법(127조)에 따르면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단체(교육청)장의 동의 없이 예산을 증액하거나 새로운 예산 항목을 만들 수 없다. 동의하지 않았는데 지방의회가 예산을 편성하면 재의 요구와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충북도의회도 지난 6일 유치원 누리과정 사업비 459억원 중 65%인 297억원을 삭감했다. 교육위원회는 이 예산과 교육비 245억원(인건비 등)을 삭감해 마련한 542억원을 예비비로 돌렸다. 하지만 김병우 충북교육감은 “지금 재정 상태로는 빚을 내 누리과정 예산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지방 교육재정은 파탄이 날 것”이라며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제주도의회는 교직원 인건비 예산 73억원을 삭감해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으로 편성했다.

 교육부는 누리과정 예산은 시·도교육청에서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10월 지방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누리과정 예산을 시·도교육청의 의무지출경비로 지정했다. 이보형 교육부 지방재정교육과장은 “지방세 세수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국회에서 3000억원의 국고를 추가 지원하기로 결정한 만큼 각 시·도교육청의 누리과정 예산 편성에는 어려움이 없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아동이 동등한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시·도의회가 예산을 편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방현·최모란·최종권 기자 kim.bangn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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