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집밥 잘하는 남자에 혹하고 의로운 베테랑에 마음 뺏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기사 이미지

올해 TV와 스크린에서는 요리 잘하는 남자들, 불의에 맞서 정의를 좇는 이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추억과 감성을 되살리는 복고 바람은 가요계까지 거세게 불어닥쳤다. 주요 트렌드를 키워드 삼아 2015년 대중문화를 돌아본다.

키워드로 본 2015 대중문화

 ① 쿡방=요리는 더 이상 주부의 일만이 아니다. ‘냉장고를 부탁해’(JTBC, 이하 ‘냉부’)를 비롯해 요리라는 ‘일’을 엔터테인먼트로 소화하는 쿡방(요리하는 방송)이 큰 인기를 누렸다. 덩달아 새로운 남성 스타 군단이 부상했다. 이연복·최현석·샘 킴 등 ‘냉부’의 요리사들은 다른 예능프로와 CF까지 전천후로 활약하며 ‘셰프테이너’(세프+엔터테이너)로 불렸다. ‘삼시세끼-어촌편’(tvN)의 배우 차승원은 빼어난 솜씨로 ‘요섹남’(요리하는 섹시한 남자)의 매력을 십분 발휘했다. 특히 ‘마이 리틀 텔레비전’(MBC, 이하 ‘마리텔’)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외식사업가 백종원은 자신의 이름을 내건 ‘집밥 백선생’(tvN), ‘백종원의 3대 천왕’(SBS)까지 진행하며 종횡무진 활약했다.

 ② 복고=올 1월 ‘무한도전’(MBC)의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로 시작된 1990년대 복고 열풍은 가요계에서 다양한 장르로 1년 내내 지속됐다.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응답하라 1988’(tvN, 이하 ’응팔’)은 감성시계를 80년대까지 돌렸다. 이 드라마에 나온 80~90년대 노래들도 가요계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KT뮤직 음원사이트 지니에 따르면 ‘응팔’의 OST 가운데 옛 노래를 리메이크한 ‘소녀(오혁)’, ‘혜화동(박보람)’ 등이 모두 10위권에 올라 있다. 극장가에서도 ‘국제시장’ ‘쎄시봉’ 등이 잇따라 개봉하며 복고 트렌드를 형성했다. 이제는 복고가 구세대의 전유물이 아니라 신세대에게도 호소력을 발휘하는 ‘복고의 일상화’ 시대라는 분석도 나왔다.

 ③ 복면=가창자는 얼굴을 가린 채 노래 실력을 뽐냈고, 청중은 편견과 선입견을 깨는 결과가 나올 때마다 기쁘게 감탄했다. 네 번째 시즌을 맞은 ‘히든싱어’(JTBC)에 더해 ‘복면가왕’(MBC), ‘너의 목소리가 보여’(Mnet), ‘슈가맨’(JTBC) 등 추리 요소를 결합한 음악프로가 여럿 등장, 새로운 예능포맷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프로에 나온 노래는 종종 최신곡을 제치고 차트 역주행을 펼쳐 풍성한 가요 라이브러리를 새로운 화제거리로 불러냈다. 추리 요소는 한편으로 ‘크라임씬’(JTBC)’, ‘더 지니어스’, ‘뇌섹시대-문제적 남자’(이상 tvN) 등 두뇌를 자극하는 예능의 흐름으로도 이어졌다.

 ④ 정의=올해 극장가는 유독 정의에 대한 갈망이 지배했다. 134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3위의 흥행 기록을 달성한 ‘베테랑’(류승완 감독)이 대표적이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는 대사를 유행시킨 정의의 사도 서도철(황정민) 형사는 재벌 3세(유아인)의 악행을 엄벌한 소시민의 영웅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여성 독립운동가 안옥윤(전지현)의 활약을 그린 ‘암살’(최동훈 감독)이 1270만 관객, 정치·경제·언론 권력의 카르텔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내부자들’(우민호 감독)이 600만 관객을 돌파한 것도 맥을 같이 한다. 안방극장에서도 시대의 정의를 묻는 ‘펀치’, ‘풍문으로 들었소’(이상 SBS) 등에 시청자 지지가 쏟아졌다.

 ⑤ 탈TV=시청자가 TV만 바라보지 않는 시대, TV를 벗어나 새로운 플랫폼으로 향한 예능프로가 큰 주목을 받았다. 인터넷 1인 방송의 형식을 지상파에 결합한 ‘마리텔’이 바로 그렇다. 아이돌·요리사·패셔니스타·운동전문가 등이 인터넷으로 사전 생방송을 진행하는 동안, 실시간 댓글을 통한 시청자 참여가 재미를 더했다. 인터넷 시청자들은 ‘모르모트 PD’, ‘기미 작가’ 등 1인 방송에 보조로 등장한 제작진까지 친근한 스타로 만들었다. 나영석PD가 강호동·이승기 등 옛 ‘1박 2일’ 멤버들과 만든 ‘신서유기’는 아예 TV 대신 포털 사이트로만 공개했다. 누적 조회 수 5000만 회 넘는 큰 반향을 얻어 ‘웹예능’의 잠재력을 보여줬다.

기사 이미지

힙합 가수 치타

 ⑥ 힙합=‘쇼 미 더 머니 ’, ‘언프리티 랩스타’(이상 Mnet) 등 TV의 랩 경연 예능프로로 불 지펴진 힙합 열풍은 여전히 거셌다. 방송의 인기를 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한 해였다. 힙합 가사의 직설화법이 그 역할을 톡톡히 했다. ‘우리’가 아닌 ‘나’라는 일인칭 주어로 내 이야기를 가감없이 한다는 데 젊은층이 열광했다. ‘스웨그(허세)’와 ‘디스(깍아내리다)’는 가사의 주요 줄거리가 됐다. 힙합의 벽을 낮춘 데는 컬래버레이션의 역할도 컸다. 지난해 걸그룹 씨스타의 소유와 힙합 가수 정기고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한 노래 ‘썸’에 이어 올해도 컬래버레이션 노래가 많이 나왔다. 힙합맨과 여자 보컬의 조합으로 사랑 노래를 주로 불렀다.

 ⑦ 스낵컬처=출퇴근이나 점심 전후 자투리 시간에 스마트폰 등을 통해 웹드라마·웹툰·웹소설·카드뉴스 등의 콘텐트를 짧게 즐기는 문화가 보편화됐다. 과자(스낵)를 집어먹듯 쉽게 즐기는 ‘스낵컬처’다. 이를 겨냥한 시장도 후끈 달아올랐다. 5분이나 10분도 길다며 ‘72초 드라마’까지 등장했다. 기존의 방송 콘텐트도 예외는 아니다. 예능프로나 드라마의 1시간 남짓한 전체 분량 대신 하이라이트·예고편 영상만 골라 보는 시청 방식이 널리 퍼졌다.

이후남·한은화·김효은 기자 hoon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