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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항공기·스마트카 … ‘메이드 인 차이나’ 전방위 공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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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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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철도 차량을 생산하는 현대로템은 지난달 주요 협력사 대표들과 함께 ‘정부 지원’을 호소하는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지난해 거둔 철도 부문의 해외 매출은 6000억원 수준에 그쳤다. 2012년(1조7000억원)·2013년(1조4000억원)의 반토막도 안 된다. 더욱이 올해는 3분기까지 달성한 수주 실적이 800억원으로 참담한 수준이다. 바로 ‘중국 기업’ 때문이다. 국제입찰에서 평균 20% 낮은 단가를 제시하는 중국 업체들에게 매번 패한 결과다.

중국 기업 저가·고품질로 경쟁력
반도체 굴기 위해 한국기술자 접촉

세계 TV시장 한국 4%P 차 추격
스마트폰 3사, 삼성과 6%P 차뿐

로켓 기술, 할리우드영화 나올 정도
“한국, R&D로 중국과 격차 늘려야?

 중국 업체들은 일본 신칸센, 프랑스 테제베가 점령한 고속철 시장을 야금야금 차지하고 있다. 지난 10월엔 중국 업체 컨소시엄이 일본 쪽을 제치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반둥 구간(150㎞)을 잇는 고속철 건설 프로젝트를 따냈다.

시속 605㎞ 고속철에 민간 항공기 납품

 극한의 속도·환경까지 도전장을 내미는 수준이다. 중국은 이미 지난해 1월 프랑스가 2007년 세운 최고 속도(시속 575㎞) 기록을 깬 고속철(시속 605㎞)을 선보였다. 지난 8월엔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구간을 영하 40도~40도 환경에서 달릴 수 있는 고속철을 개통했다. 이봉걸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중국의 고속철 경쟁력은 한국을 누른지 오래고 일본·독일·프랑스와 경쟁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경제 ‘최후의 보루’격인 반도체 산업에서도 중국의 성장이 예사롭지 않다. 중국은 세계 메모리 반도체의 절반 이상을 사용하는 최대 소비국이다. 하지만 자급률은 20%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중국 정부는 지난해 1200억 위안(약 21조원) 규모의 ‘국가 집적회로 산업 투자기금’을 조성하고 전방위 지원에 나섰다. 여기에 다양한 중국 기업·펀드들까지 가세해 각국의 반도체 생산·설계 기업을 인수하고 있다.

 특히 중국 업체들은 우리나라 전문 인력들에게 1년 연봉의 5배를 3년간 보장하는 ‘파격적 제안’으로 스카우트에 나서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서 ‘1·5·3 제안’이란 말이 유행할 정도다. 최근 중소형 반도체 회사의 적지 않은 인력이 중국행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중국이 디스플레이 산업 육성을 시작할 때 국내 인력을 빼갔던 것과 비슷하다. 중국은 2003년 초 경영난을 겪던 액정표시장치(LCD)업체 하이디스의 인재를 흡수해 BOE를 키웠다. 현재 BOE는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한국을 맹추격 중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은 선진국보다 늦게 기술화를 시작했지만 워낙 내수시장이 커서 짧은 시간에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선진국 따라잡기에 나섰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은 ‘메이드 인 차이나’의 공세에 이제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글로벌 자동차 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A사는 최근 국제전시회에 출품된 중국산 사양을 보고 겁을 먹었다. A사가 수십년 간 축적한 첨단가공 기술과 거의 비슷한 수준에 가격은 반값이었다. 중국 회사 전시관에 해외 구매자들이 몰린 반면 A사 쪽엔 발길이 뜸했다. 이 업체 임원은 “몇년 전 은퇴한 엔지니어들이 설계도면을 그대로 들고 나가 건넨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라며 “제품개발 초기에 문제가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를 고쳐 제공하기 때문에 바이어들도 결국 중국산을 찾는다”고 했다.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인 스마트폰·TV는 중국 후발주자들로부터 직접적 위협을 받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올 3분기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서 화웨이(7.7%)·레노버(4.9%)·샤오미(4.9%)가 3~5위를 차지했다. 이들 중국 3사의 점유율은 17.5%로 애플(13.1%)을 뛰어넘어 삼성전자(23.7%)를 바짝 쫓아오고 있다. LG전자는 5위 바깥으로 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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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의 경우 삼성·LG전자를 필두로 한국산 점유율이 31.7%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일본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점유율 27.2%로 따라오고 있다. 중국산은 기술력에 가격경쟁력까지 갖췄다는 게 강점이다. 보급형의 풀 고화질(HD) TV는 한국 제품보다 20~30% 싸다. 한국에 TV를 출시한 TCL의 관계자는 “품질에 깐깐한 미국에서도 점유율을 늘리고 있다”며 “삼성·LG 제품과 비교해 성능·디자인 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고 자신했다.

 중국은 한국이 갖고 있던 ‘조선 강국’이란 타이틀도 꿰찼다. 중국은 수주 잔량 기준으로 2010년 이후 줄곧 1위다. 그간 높은 수준의 기술장벽으로 한국이 우위를 점하던 해양플랜트 분야도 잠식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던 석유화학·철강 등도 중국과의 경쟁에 힘이 부친다.

자율주행차 베이징 시내 30㎞ 달려

 중국이 최근 선보이는 기술력엔 선진국들도 주목하고 있다. 지난 9일 바이두가 개발한 자율주행차는 베이징 시내에서 운전 조작 없이 고속도로·골목 등 30㎞를 스스로 주행했다. 다른 차량과의 거리, 교통 표지판과 차선·신호 등을 인식하고 유턴과 좌·우회전, 차선 변경 등도 수행했다. 고속도로에서는 시속 100㎞로 달리기도 했다.

 중국의 첨단 기술은 공상과학(SF) 영화 소재로도 종종 등장한다. 영화 ‘그래비티’에선 주인공 라이언 스톤(샌드라 블록)이 중국이 만든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귀환하는 데 성공하는 장면이 나온다. 최근 개봉한 영화 ‘마션’에선 화성에 조난당한 주인공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을 구하기 위해 중국 발사체가 등장한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은 “발사체를 쏠 수 있는 나라는 중국 밖에 없다”고 말한다.

 영화 같은 일이 중국에서 현실화하는 일도 벌어졌다. 중국 광치(光啓) 과학은 지난 6일 중국 선전시의 공원에서 세계 최초의 개인용 비행장치인 ‘제트팩’의 시험 비행을 진행했다. 일명 ‘아이언맨 수트’로 불리는 장치다. 이 회사는 “프로펠러 2개로 추진해 최대 몸무게 120㎏의 사람을 싣고 최대 고도 1.5㎞, 최대 시속 80㎞로 40분간 비행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드론·생체인식 … 분야 안 가리고 과학굴기

 이처럼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중국의 첨단 기술은 항공·우주·무인항공기(드론)·군사·고속철·생체인식 등을 가리지 않고 이목을 끌고 있다. 과거 단순한 ‘제조 기지’에 불과했던 중국의 ‘과학 굴기’다.

 중국은 지난 9월 세계 최고 속도(시속 6180㎞)의 비행체 발사 시험에도 성공했다. 지난달엔 보잉·에어버스가 시장을 양분한 민간 항공기 ARJ21-700을 처음 고객사에 인도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은 항공·우주 분야에서 중국이 한국을 4.3년 앞선 것으로 분석했다.

 아마존·구글도 뛰어든 드론은 이미 세계 시장을 중국이 쥐락펴락하고 있다. 2006년 창업한 중국 DJI가 세계 소형 드론 시장의 70%를 점유한다. 2013년 누구나 쉽게 조작할 수 있는 항공 촬영용 드론 ‘팬텀’을 세계 최초로 출시한 덕분이다. 이철용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드론 분야에서 중국은 ‘짝퉁 왕국’이 아니라 세계를 선도하는 수준에 올랐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끊임없는 연구개발(R&D)로 중국과의 기술 격차를 늘리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한재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섬유·바이오 기술의 합작품인 ‘고어텍스’ 같은 융합 신산업 발굴에 과감히 뛰어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채성 기술경영경제학회장은 “모바일 의료정보 서비스 같은 산업의 디지털화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선 과거 전통산업에 적용되던 규제를 대폭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내수시장에서 현지 수요를 꿰뚫은 ‘메이드 포 차이나’로 역공을 가하라는 주문도 나온다. 김시중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상대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디자인·아이디어 등 소프트파워를 키울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장병송 KOTRA 중국사업단장은 “K뷰티 열풍을 타고 성장한 코스맥스처럼 철저히 현지 소비자 입맛에 맞도록 현지화한 상품과 서비스를 내놓아야 승산이 높다”고 말했다.

 구희령·김기환 기자 hea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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