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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공천·정당·선거구 … 3중 안개에 싸인 총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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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오늘은 내년 4월 20대 총선에 출마하는 예비후보들이 등록을 시작하는 날이다. 그런데도 많은 지역에서 선거구가 확정되지 않았다. 야권 분열로 정당들이 유동적이고, 공천 룰이 요동치는 데다 선거구까지 미정(未定)이니 출마자들은 3중 안개에 갇혀 있는 셈이다. 희한한 나라의 희한한 선거다.

 선거구 인구편차를 2대 1로 줄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현행 선거구는 조정돼야 한다. 선거구는 선거일 150일 전까지 확정되도록 법에 정해져 있다. 여야는 이미 시한을 어겼다. 그리고 헌재는 연말까지 현행법을 개정하도록 정했기 때문에 올해가 지나면 현행법은 무효가 된다. 그러면 한국은 아예 선거구가 없는 나라가 된다. 선거구를 정하는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오늘 활동시한이 끝난다. 이를 연장하려면 본회의를 열어야 하는데 여야는 아무런 합의를 못하고 있다. 야당의 혼란이 커지면서 국회 일정은 더욱 난항이다.

 현행 선거법과 공천제도는 현역 의원들에게 유리하다. 선거구가 정해지지 않으면 이런 불균형은 더욱 심화된다. 예비후보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 플래카드를 걸거나 명함을 돌려야 하는데 조정 대상 지역에서는 선거구를 명시하는 게 힘들 것이다. 반면 현역은 이미 이름이 알려진 데다 의정보고서를 마구 뿌릴 수 있다.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런 조건에서는 유능한 신인이 정치권에 진입하기 어렵다. 그래서 여야가 기득권을 위해 일부러 선거구 획정을 늦추는 것 아니냐는 의심까지 나돈다.

 여야는 지역구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줄이는 데는 합의했다. 하지만 야당이 비례대표 배분 방식을 바꿀 것을 주장하는 바람에 선거구 획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15일까지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입법 비상사태’로 규정해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해 놓았다. 특단이란 선거구 획정안을 직권으로 상정해 처리하는 것이다. 야당의 반대를 뚫고 그가 이를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래저래 한국 정치권은 혼돈의 12월을 지내고 있다. 한국 사회를 위협하는 3류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