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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안철수 탈당, 중도개혁 정당 시금석 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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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새정치민주연합의 직전 대표였던 안철수 의원이 13일 합당 1년9개월 만에 탈당했다. 그동안 국민들은 강력한 야당이 거대 여당과 생산적 경쟁을 하길 기대했다. 새정치연합이 속히 내홍을 수습하고 일치단결한 모습으로 총선 체제에 들어가기를 바랐던 것도 이 때문이다.

‘문-안 전쟁’ 석 달 만에 결별
좌우에서 개혁 세력 영입해
제대로 된 중도의 길 걸어야

 그러나 지난 석 달 동안 문재인 대표와 안 의원은 얼굴 한번 제대로 마주치지 않은 채 핑퐁게임 식으로 상대방에게 자신의 입장만 요구했다. 새정치연합이 제1야당의 책무를 수행하기는커녕 내분조차 수습하지 못하는 파벌 간 야합체일 뿐임을 드러낸 것이다. 안 의원의 탈당은 두 사람의 다툼이 야당의 지리멸렬과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치달으면서 차라리 갈라서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은 결과일 것이다.

  무엇보다 문 대표의 책임이 크다. 문 대표가 진심으로 당의 분열을 원치 않았다면 안 의원으로 대표되는 비주류의 존재를 인정하고 출구를 열어 줬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안 의원이 요구한 ‘혁신 전당대회’를 끝내 거부했고, 납득할 만한 대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 대표가 안 의원을 붙잡지 못한 근본 원인은 친노파에 휘둘려 당을 패권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는 안 의원에게 탈당의 명분을 안겨준 것이나 다름 없다.

 지금 새정치연합은 조직·정책비전·인적자원 등에서 새누리당에 크게 뒤진다. 그럼에도 ‘자신들만 선(善)’이란 오판 아래 이념·계파에 따라 ‘좌파 기득권’ 지키기에 급급했다. 19대 국회에서 자동폐기된 법안이 1만1000건이 넘고 소속 의원들이 여당 의원 뺨치는 비리를 저질러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국민 대신 재야·귀족노조 눈치만 보았다. 총선에 새정치연합 간판 달고 나오면 100석 이상이 자동 보장된다는 오만 때문이다. 국민의 대다수인 중도층과 서민들은 기댈 곳이 없다.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이 20%에 불과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더 큰 문제는 여당 지지층(40%)을 제외한 나머지 40%는 지지정당이 아예 없다는 현실이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치 공동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4년 전 ‘안철수 신드롬’이 만개한 건 바로 그런 정치공동을 메워줄 기대주로 국민들이 안 의원을 호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 의원은 2011년 서울시장 선거와 이듬해 대선에서 잇따라 ‘철수’한 데 이어 지난해 ‘새 정치’의 정신이 느껴지지 않는 민주당과의 합당으로 지지층을 잇따라 실망시켰다. 그럼에도 안 의원의 탈당에 적지 않은 국민들이 지지를 표하고 있는 건 개혁을 바라는 유권자의 열망이 여전하다는 방증일 것이다.

 우리 정치는 오랫동안 상식과 합리에 바탕한 중도 개혁 정당을 열망해 왔다. 그럼에도 지역주의를 악용한 거대 양당의 담합구조 때문에 중도 정당은 국회에 발을 붙일 수 없었다. 안 의원의 탈당은 이런 담합구조를 국민이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시점이 됐음을 보여준다. 그런 만큼 안 의원은 20대 국회에 반드시 존재감 있는 중도 정당을 입성시키겠다는 각오로 보수·진보 양측에서 합리적 개혁세력과 손잡아야 한다. 소수의 강경파 대신 말없는 다수의 입장에서 당의 노선을 제시하고, 민생 법안은 초당적으로 통과시키는 결단력이 절실하다. 또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안보와 화해가 균형 잡힌 대북정책 등 국민 눈높이에 맞는 정책으로 새정치연합과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

 안 의원의 탈당은 우리 정당들이 정체성이 분명해지는 계기를 줬다. 새누리당은 ‘보수’, 안철수는 ‘중도’, 문재인은 ‘진보’의 길로 갈 필요가 있다. 각자 정체성에 맞는 정책을 제시하고 대대적 인적 혁신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기 바란다. 여기엔 안 의원의 정치력이 절실하다. 총선 승리에 급급해 정체성이 다르거나 낡은 세력과 연대한다면 또다시 국민의 외면을 자초할 것이다. 그러면 모처럼 꽃핀 중도 정당의 가능성도 허공에 날아간다.

 새누리당도 새정치연합의 분열을 즐기고만 있을 상황이 아니다. 안 의원 탈당에 가려져서 그렇지 공천권을 둘러싼 새누리당의 내홍도 야당의 분열상 못지않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친박·비박 나뉘어 싸움질만 하다가는 언제든 지지율이 반 토막 날 수 있다는 교훈을 새정치연합의 비극에서 찾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