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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 칼럼

더 미룰 수 없는 사용 후 핵연료 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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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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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2015년엔 우리나라 원자력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이 많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전인 고리 1호기에 영구정지와 폐로가 결정됐다. 원전 사이버 보안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이에 대한 노력이 한층 강화됐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후속조치가 마무리되고 있으며 안전에 관한 노력도 지속되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주춤했던 원자력이, 세계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이 인류의 지속 가능성에 중대한 요소로 부각되면서, 재조명되고 있다. 영국은 장기간의 침묵 끝에 오래된 원전과 환경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석탄발전소를 대체하여 8기의 원전 건설계획을 제시했다. 일본 역시 원전의 가동을 속속 재개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석탄발전소 2기를 포기하고 원전 2기를 추가로 건설하기로 했다.

 한미원자력협력협정이 갱신되면서 사용 후 핵연료와 관련한 연구의 자율성이 보다 증진되었으며 핵연료 공급과 원전 수출과 관련한 진일보한 정보 교류의 채널이 확보됐다. 경주의 중저준위폐기물 처분장이 운영 허가를 받고 운영을 개시하면서 방사성폐기물에 관한 절반의 목표는 마무리됐다. 나머지 절반인 사용 후 핵연료에 대해 공론화 위원회는 ‘사용 후 핵연료 관리에 대한 권고안’을 정부에 제출했고, 정부는 이 권고안을 바탕으로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정책을 마련 중이다. 이는 원자력을 전공하지 않은 사회 각층의 숙의 끝에 도출된 것으로 원전 사용의 부산물인 사용 후 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시각을 제시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재 가동 중인 24기의 원전에서 매년 약 700톤의 사용 후 핵연료가 발생한다. 이들은 원전 내의 저장시설에 저장되고 있으나 저장용량의 70%를 넘어서고 있어 사용 후 핵연료 처분시설의 확충이 시급한 상황이다. 따라서 2016년에는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정책이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용 후 핵연료 관리 정책은 나라마다 법과 제도가 다르고, 환경적 여건과 사회적 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관리 정책 역시 다르다. 사용 후 핵연료를 폐기물로 보고 처분하고 끝낼 것인지, 자원으로 보고 재활용한 후 찌꺼기만을 처분할 것인지 등 여러 가지 방식이 제시될 수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고준위폐기물에 대한 처분시설은 필요하다.

그간 사용 후 핵연료 정책이 표류했던 것은 최종적인 처분방침을 결정하지 않은 채 임시저장이라는 단기 목적에 충실했던 데에 원인이 있다. 사용 후 핵연료의 궁극적 처분방식에 대한 합의, 중간저장시설의 확보 등 많은 숙제가 있다. 하지만 더는 이 문제를 미래 세대에 전가할 수 없다. 값싸고 안정적인 전력공급의 혜택을 입은 세대가 해결할 책임이 있다. 사용 후 핵연료 관리는 정치적 찬반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우리가 원자력발전을 시작할 때부터 예정되었던 과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국가적 과제임이 분명하다.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사용 후 핵연료의 안전한 처리를 논하는 데는 친원자력도, 반원자력도 있을 수 없다.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