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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금 손실 두려워 주식 투자 안 한다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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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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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미국의 뉴욕증권 거래소 에 상장된 코리아 펀드(The Korea Fund)의 아이디어를 처음 생각한 니콜라스 브렛(Nicholas Batt, 이하 닉) 그리고 그 펀드를 뉴욕 거래소에 상장시킨 스커더 스티븐스 앤드 크락(Scudder Stevens and Clark, 이하 스커더) 이라는 회사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1970년대 중반 스커더에는 닉 이라는 일본담당 젊은 애널리스트가 있었는데 투자를 위해 일본에 자주 갔다고 한다. 그는 일본기업을 방문하면서 통상적인 질문인 미래의 전망을 물어봤는데 많은 일본기업의 대답이 한국의 발전하는 경쟁력이 걱정이라고 했다고 한다. 한국에 대한 지식이 없던 닉은 한국에 대한 호기심으로 즉시 한국행 비행기를 타고 1975년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대표적인 한국기업인 삼성전자, 포항제철 등을 방문한 닉은 한국에 대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에 돌아가자마자 스커더에 한국에 투자하는 펀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당시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그 당시는 캐나다에 투자하는 것조차도 위험하다고 생각할 정도이니 한국에 투자하는 생각은 상식을 뛰어넘는 제안이었다. 당연히 강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닉은 포기하지 않고 같이 한국에 가보고 결정하자고 경영진과 투자가를 설득해 한국을 방문하게 된다. 방문한 사람은 한국을 달리 보게 됐고 코리아 펀드를 출시하기로 결정 드디어 1984년 뉴욕에 상장하게 된다.

 나는 1991년부터 15년 동안 코리아펀드의 펀드메니저로 일했고 그 15년이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기간이 아닌가 싶다. 닉과 같이 전세계를 다니면서 코리아펀드와 한국주식시장을 소개했다. 코리아 펀드는 대성공을 했다. 1984년 상장했을 당시 600억원이었던 자산이 2005년 내가 코리아펀드를 사임할 당시 1조 5000억원 정도로 불어나 있었다. 코리아펀드에 담겨 있던 주식 중 삼성전자의 취득가격이 1만원 미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계최초의 자산운용회사였던 스커더에서 나는 투자에 관한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었다.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은 주식은 장기 투자해야 하며 단기간에 사고 파는 것이 아니라는 철학이다. 주식을 매입한다는 것은 증권이라는 종이를 사는 것이 아니고 회사의 일부분을 소유하는 것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그동안 미국에서 외국인의 한국투자유치를 위해 노력하였다면 이제는 미국의 선진투자문화를 한국에 정착시키는 데 힘쓰고 싶다.

 우선 한국의 투자문화의 변화가 절실하다. 주식을 아직도 단기적인 매매 수단으로 생각하는 투자가가 대부분이고 원금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주식을 기피한다. 미국 투자가 30년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에 투자해서 큰 수익을 올린 것처럼 한국 투자가도 주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주식이 장기적으로는 위험하지 않고 오히려 주식을 하지 않고는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위험하다는 고정관념에 주식투자 자체를 안 하는 것은 원금의 손실을 피할 수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수익도 포기해야 한다. 한국근로자의 퇴직연금 중 주식비중이 다른 국가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그 결과 은퇴한 노인층의 빈곤율은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하게 높다. 어렸을 때부터 주식 투자에 익숙해 있지 않고 노후준비를 미리 하지 않은 결과다.

 일본이 과거 20년간 침체를 겪은 여러 요인 중의 하나가 금융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일반인의 노후 자금이 미국처럼 기업에 투자돼 부를 창출하지 못하고 은행예금에 묶여서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 치명적이다. 한국이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은행예금에 묶여있는 자금이 다양한 형태로 기업에 투자돼야 하고 많은 부가 창출되면서 자연스럽게 일반 투자가의 노후가 준비될 수 있는 선 순환이 필요하다.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 빨리 변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근간인 노동과 자본에서 자본의 효율적인 투자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 진다. 노동보다 자본의 증가속도가 훨씬 빠르다. 앞으로는 미국의 워런 버핏처럼 주식투자를 통한 부자가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원금을 지키는 노력보다는 앞으로 크게 성장할 보물 같은 주식을 찾는 노력이 훨씬 중요하다. 현재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보물 같은 주식은 반드시 존재한다. 단 장기투자가만이 결실을 누릴 수 있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