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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팬티 속 찰흙 붙여 체중 늘리고 … “안 들려요” 난청 우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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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3월 13일 광주지방병무청에서 징병검사를 받던 양모(25)씨는 체중계에 오르기 직전 병무청 직원에게 제지당했다. 양씨의 팬티 안쪽이 눈에 띄게 불룩 튀어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별도의 장소로 데려가 팬티 속을 확인한 신체검사 담당자는 혀를 찼다. 양씨의 양쪽 허벅지에 손바닥만 한 크기의 문구용 지점토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양씨는 재판에 넘겨져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병무청 최근 5년간 151건 적발
무릎 슬쩍 굽혀 키 줄여 ‘면제’
미 명문대생이 초등 중퇴 속이고
몸 전체 문신에 고환 제거까지

 #2011년에 현역 입영 판정을 받은 이모(23)씨는 그 후 사고로 손가락이 끊어져 마디를 이어 붙이는 수술을 받았다. 이후 입대 시기가 다가오자 이씨는 과거 접합수술한 손가락을 다시 절단하는 수술을 했다. 이씨는 이어 올해 6월 25일 서울지방병무청에서 재검을 받고 5급(군 복무 면제) 판정을 받았다. 병무청 관계자는 “ 고의 절단을 확인하고 10월 1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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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무청이 8일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정미경 의원에게 제출한 ‘병역 면탈 적발 현황’에서 드러난 엽기적인 사례들이다. 최근 5년간 불법으로 군대를 안 가려 했다가 적발된 사례는 151건이다. 2011년 15건에서 2012년 9건으로 줄었다가 2013년 45건, 2014년 43건으로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는 10월 말 현재 벌써 39건이나 적발됐다.

 39건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건 고의 체중 증감(11건)이었다. 군 관계자는 “살을 찌우면 4급 사회복무요원으로 복무를 대신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3~6개월 동안 몸무게를 30~50㎏ 늘린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반대로 체중을 감량해 병역을 감면받으려다 적발된 건수도 올해 6건에 달했다. 병무청은 몸무게(㎏)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눈 값인 체질량 지수(Body Mass Index)를 기준으로 신체 등위(1~6급)를 정한다. 병역기피자들은 키를 기준으로 할 때 지나치게 과체중이거나 저체중이면 현역 입대(1~3급)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악용했다.

 체중뿐 아니라 키를 속이는 병역기피자도 적발됐다. 서모씨는 징병검사를 받으면서 담당 직원 모르게 무릎을 슬쩍 굽히는 수법으로 키를 줄여 군 복무 면제 판정을 받았다. ‘징병 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에 따르면 키가 1m40㎝ 미만이면 체중과 관계없이 6급(병역면제)이고, 1m40㎝ 초과~1m46㎝ 미만은 5급(군 복무 면제)에 해당한다. 서씨는 현재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신체 일부를 훼손해 병역을 기피하는 수법도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다. 유모씨는 종아리와 허벅지에 있는 뼈를 늘려 키를 키우는 수술을 한 뒤 ‘하체가 불편하다’는 후유증을 위장해 장애인으로 등록했다. 이어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하니 기존 병역 처분을 변경해달라”고 요구하다 병역 당국에 적발됐다. 군 관계자는 “어깨 관절을 파열시키거나 습관성 탈골증으로 보이기 위해 관절을 빼는 경우가 다수 적발됐다”며 “심지어 발기부전제 주사를 놓은 뒤 양쪽 고환을 제거하거나 불필요한 척추 수술로 병역을 면탈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의 문신에 따른 병역기피 사례(2011년 2건 →2014년 13건)도 꾸준히 늘고 있다. 상체 또는 몸 전체에 문신을 하면 현역 입대가 어렵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서류를 위조해 병역을 기피한 사례도 끊이지 않았다. 군 관계자는 “고아 출신이라고 위장 등록해 병역면제를 받는가 하면, 미국의 유명 대학교에 재학 중이지만 이 사실을 숨긴 채 국내 학력인 초등학교 중퇴를 사유로 병역면제를 받았다가 적발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정신질환을 이유로 병역을 감면받으려는 건수도 증가세다. 최근 5년간 적발된 35건 중 지난해(14건)와 올해(7건) 적발된 건수가 절반을 넘는다. 이들은 대부분 대인기피·우울증 등 조현병(정신분열증)이나 인격 장애가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했다. 이들 중엔 의사나 병무청 직원 앞에서 “말하는 게 안 들려요”라는 식으로 난청이 심한 것으로 위장해 병역을 감면받으려는 병역기피자도 있었다.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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