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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조직 힘으로만 누르면 제2, 제3 세력 끝없이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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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강정현 기자 중앙일보 사진기자

전 세계가 테러 공포에 빠져들고 있다.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11월 13일(현지시간) 벌인 파리 테러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와 영국 런던 등에서 도미노 테러가 발생해서다. 이에 따라 서구의 대응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있다. 미국에선 무슬림(이슬람 신자) 입국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고, 프랑스에선 반(反)이민을 앞세운 극우 국민전선(FN)이 지방선거에서 대승했다. 자칫 비이성적인 이슬람포비아(이슬람에 대한 혐오)의 전 세계적인 확산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중동·이슬람 분야의 권위자인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를 만나 테러의 배경과 처방을 들어봤다.

[채인택의 직격 인터뷰]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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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교수는 역사적으로 1000년 이상 유럽에 앞섰던 이슬람 세력이 지난 200년간 서구 지배를 받으며 생긴 역사적 트라우마 때문에 중동 주민에겐 태생적 반서구 DNA가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이들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배려하면서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이 세계평화를 위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강정현 기자]

-최근 IS와 관련된 테러가 잇따르고 있다. IS의 테러에는 어떤 노림수가 숨어 있는가.

 “중요한 것은 IS가 이슬람권 내에서도 지지기반을 거의 갖지 못하는 반(反)이슬람적 범죄집단이란 점이다. 올해 2월 알자지라방송에서 이슬람권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했더니 온건파는 1% 정도, 강경파는 4% 정도만 IS를 추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IS는 존재감을 과시하고 전 세계 추종자를 모으기 위해 잔혹성을 극대화한 끔찍한 범죄와 이를 통한 공포 확산을 선전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사람들이 몸서리치며 이들을 싫어할수록 선전효과는 극대화된다. 알카에다와도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태의 테러집단이다. 인류는 그만큼 더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슬람 관련 테러의 특징 중 하나가 자살공격이다. 도대체 이런 무모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인류학자로서 자살대원들과 인터뷰한 적이 있다. 1988년까지만 해도 이슬람 세계에서 자살폭탄 테러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2001년 9·11테러가 일어나고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시리아 내전을 거치면서 극렬화됐다. 이라크 전쟁에서 약 22만 명, 시리아 내전으로 약 25만 명의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됐다. 직계가족까지 따지면 수백만 명이 고통 받고 있다. 눈앞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이 수백만 명이나 존재한다는 것은 극도의 분노와 복수 세력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이 사람들이 가족의 희생에 분노하며 자살폭탄 테러라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저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랍에는 ‘인티캄’이라고 하는 독특한 복수문화가 있다. 가족의 일원이 부당하게 희생됐을 때 구성원 전체가 대를 이어 보복하는 것을 명예로 여기는 전통이다. 물론 서구화되면서 완화되긴 했지만 아직도 이 전통이 남아 있어 분노 세력이 이를 이용해 자살폭탄 테러를 부추긴다. 종교적으로는 급진 이슬람 세력이 선을 위해 테러를 하면 천국으로 직행한다는 잘못된 환상을 심어 주며 젊은이들을 부추기기도 한다. 하지만 권위 있는 이슬람기구에선 인명을 해치는 자살폭탄 테러는 율법에 어긋난다고 분명히 해석한다. 따라서 자살 테러는 이슬람이 아닌 분노 세력의 보복방식으로 보는 게 맞다.”

 -중동·이슬람 세계에선 서구에 적대감을 표출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 중동 무슬림들에게는 태생적인 반서구 DNA가 있다고 보면 된다. 반인류적이고 보편적 인간 가치에 반하는 IS의 행동에 찬성할 수는 없지만 속 시원해하는 대중이 많은 게 사실이다. 서구와 이슬람 세계는 1200년에 걸쳐 지배와 피지배가 뒤집어진 역사적인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아랍에서 출발한 이슬람은 711년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까지 확대됐다. 732년께엔 프랑스 파리 교외까지 진출했다. 1453년에는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발칸을 이슬람화한 데 이어 1683년엔 당시 유럽의 최강국이던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의 심장인 빈을 포위했다. 지브롤터 해협이 뚫린 711년부터 빈이 공격당한 1683년까지 거의 1000년간 유럽은 이슬람 세력을 당하지 못했다. 하지만 100년 정도가 지난 1798년 나폴레옹의 이집트 정벌 이후 서구와 이슬람의 관계는 역전됐다. 그 뒤 200여 년 동안 모든 이슬람 세계가 단 한 지역의 예외도 없이 서구의 지배를 받았다. 그 뒤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중동·이슬람 지역은 서구의 손에 의해 지금과 같은 개별 국가로 쪼개지게 됐다. 우리의 일제 35년 트라우마를 생각하면 이슬람 세계에서 1200년에 걸친 지배와 피지배의 트라우마가 얼마나 강력한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000년간 야만과 미개의 세계라고 여겼던 서구로부터 200년간 거꾸로 지배당하는 이슬람 세계가 이를 쉽사리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90%의 주류 세력은 현실을 수긍하고 서구와 협력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10% 정도의 원리주의 세력은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은 전통적 가치를 버리고 서구의 사악한 바이러스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 이 중 ‘그렇다면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움직이자’는 게 3%에 해당하는 알카에다 지지 세력이고, 알카에다가 무너지자 새롭게 등장한 것이 1%쯤 되는 IS 옹호 세력이다.”

 -이슬람을 평화와 순종의 종교라고 하는데 왜 중동·이슬람 지역에서 이렇게 독버섯 같은 극단주의자들이 나오게 됐을까.

 “이슬람이란 단어는 히브리말로 ‘살람’과 마찬가지로 ‘평화’라는 뜻이다. 이는 신학적으로 복종을 의미한다. 절대자인 알라(유일신)에게 완전한 순종과 복종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치는 종교다. 이것이 오늘날 가장 반(反)평화적인 종교란 오명을 쓰게 된 이유는 이슬람의 종교적 문제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슬람 사회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정치의 역학관계, 무슬림 세계의 갈등과 분노, 최근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시리아 내전 등이 더욱 본질적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원래 이슬람은 포용과 관용의 톨레랑스 종교였다. 톨레랑스는 자신이 강자일 때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것이다. 200년 이상 약자의 입장이 된 이슬람 세계가 관용과 포용을 베풀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류는 현실을 수긍하고 서구와 협력하며 실리적 입장을 취하는 반면 많은 급진주의 세력은 무모한 대결구도를 보여 주고 있고, 이는 테러로 이어지고 있다. 이슬람 세계는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리비아 등 상당수 지역이 현재도 전쟁 상태에 있다. 전쟁 상황은 인간이 합리적 상식과 이성으로 살지 못하게 한다. 이런 전쟁 상황이 급진주의자의 온상이 되고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는 것이다. 시리아 내전을 비롯한 전쟁 상황부터 해결해야 하는 이유다.”

 -IS는 3만~5만 명의 외국인 병력을 보유한 거대 세력으로 성장했다. 전 세계 젊은이가 가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 IS의 놀라운 전략은 시리아 라카를 중심으로 전 세계 100여 개의 세포조직을 운영하면서 무슬림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사회적 분노 세력을 끌어모으는 전술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2월 시리아 접경지대에서 취재를 할 당시 파악한 바로는 터키 군경의 봉쇄를 뚫고 시리아로 잠입한 외국인이 3500명 정도이고 잡혀서 감금되거나 추방된 외국인이 1만8000명가량이었다. ‘구름처럼 모여들고 있다’고 할 정도로 전 세계의 소외계층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극단적 분노를 표출하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IS를 찾고 있는 것이다. 유럽의 소외된 이민 2세뿐 아니라 이슬람권 이외의 1%의 사회불만 세력에도 손을 뻗고 있다는 점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파리 테러의 주범을 살펴보면 전혀 종교적이지 않은 데다 심지어 무슬림의 2세로 태어났음에도 이슬람 사원에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이슬람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차별과 취업, 경제적 불평불만이 본질적인 문제다. 해결을 위해선 이런 부문에 더 신경 써야 한다.”

 -샌버너디노 사건이 무슬림 부부의 자생적인 테러로 드러나자 미국에선 대선주자는 물론 대학총장까지 나서 무슬림을 등록시키겠다, 총을 들고 맞서자 등 차별이나 반감을 조장하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 이슬람포비아는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파리 테러 이후 가속화되는 듯하다. 9·11테러 이후 14년 동안 테러를 분쇄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4조 달러 이상을 썼지만 빈도나 피해자 수, 조직원의 활동 등에서 테러는 그 이전보다 오히려 10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슬람포비아를 내세우면서 군사 공격을 하는 것으로는 인류 사회가 테러를 궤멸할 수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진 것이다.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것이 범죄자만이 아니라 이슬람 전체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여론으로 고착화된다면 세계는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 따라서 무력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치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IS를 물리칠 수는 있을까. 이를 위해 군사적 개입, IS의 자금줄을 말리는 방안과 함께 중동 이슬람 지역 주민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다양한 방안이 나오고 있다. 국제사회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IS는 사실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다. 전 세계를 적으로 돌렸고 이슬람권 내에서도 지지 세력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IS는 시리아 내전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 맞서는 반군의 핵심으로 가담해 왔다. 그러자 러시아와 가까운 알아사드를 견제하기 위해 미국이나 유럽연합(EU),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는 IS를 묵인하거나 지원한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파리 테러 이후 반인륜적 범죄집단으로 세계가 한목소리를 내면서 IS가 성공할 확률은 더욱 작아졌다. 문제는 현재 테러 세력을 궤멸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민간인이 희생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IS가 없어진다고 해도 이들을 이어 분노의 보복에 나설 급진 세력이 우후죽순처럼 생기는 악순환의 고리가 있다. 서구는 대테러 전쟁의 비용에는 많은 돈을 쓰면서도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또 다른 피해자에게는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패러다임을 바꿔 테러 궤멸과 동시에 더 많은 관심과 예산을 민간인에게 삶의 기반을 확보해 주는 데도 써야 한다. 시리아 2200만 인구 중 1160만 명이 난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외과적 수술만으로는 테러를 해결하기 어렵다. 이제는 울부짖는 전쟁 피해자와 고아에게 기본적인 의식주와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마련해 주는 인간적인 배려가 중요하다.”

 -국내에도 수많은 무슬림이 결혼이민이나 산업연수생으로 살고 있다. 이들에게 어떤 배려가 필요할까.

  “국내 거주 외국인의 문제점 중 하나가 노동 이주민 위주라는 것이다. 다문화가 성숙하려면 고급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 이 땅에 태어난 2세 이주민들이 브리지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말은 조금 어눌하더라도 어머니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배워 우리 기업의 진출이나 양국 간 문제 해결의 핵심 역할을 할 수 있게끔 키우는 게 중요하다. 기업에서 이런 다문화 2세를 잘 채용하고 국가기관에서도 근무할 역할을 준다면 오히려 이주민 후손이 다른 한국인보다 자긍심을 가지고 국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긍정적인 매력국가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글=채인택 논설위원
사진=강정현 기자

이희수 교수는 …   62세. 한국외국어대 터키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중동지역학 석사를 마친 뒤 국비 유학생으로 터키 이스탄불대학에서 1988년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터키 국립이스탄불마르마라대 역사학과 조교수를 지내다 93년부터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한국 내 중동 이슬람 분야 개척자이자 권위자다. 한국민족학회·한국이슬람학회·한국중동학회 등의 회장을 지냈다. ?한·이슬람교류사? ?이슬람과 한국문화? 등의 저서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