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삶의 향기

진실한 뒷모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기사 이미지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진흙 속에서 진주를 발견하는 기분이 이럴까? 최근에 별 기대도 하지 않고 갔던 전시회에서 작은 감동을 받고 돌아왔다. 유명 작가의 전시회가 아니라 한 미술 대학의 졸업전이었다. 소박한 공간에 투박하게 여기저기 걸려 있는 그림들은 예외 없이 인물의 뒷모습을 그렸다. 모델의 이름이 제목인데, ‘지혜’ ‘현지’ ‘경비 아저씨’ ‘외할머니’ ‘목사님’같이 적은 걸 보니 아마도 이 어린 화가의 주변 인물인 모양이다. 모두 등을 돌린 채 앉아 있는데도 자세와 골격만으로 각자의 개성과 분위기가 절묘하게 묻어났다. 누군가의 등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해 쉽게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원래 뒷모습은 보여주는 게 아니라 들키는 것이다
앞모습을 꾸미는 데만 노력하고 있는 건 아닌지 …

 전시회의 인상이 강렬해서일까. 그날 이후 자꾸 사람들의 뒷모습에 눈길이 간다. 요즘 경기가 나쁘고 날씨도 추운 탓인가. 유난히 축 늘어진 어깨, 잔뜩 경직된 등, 구부정한 자세, 짓눌린 목선이 주로 시선에 잡힌다. 그러다 문득 뒷모습을 애써 꾸민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원래 뒷모습은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들키는” 것이라고 했던가. 뒷모습이야말로 다른 이의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모습이기에. 그래서 우리의 뒷모습은 언제나 정직하고 솔직하다. 의도적으로 만들고 꾸민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그렇게 돼버린 것이 뒷모습이니까. 아마도 화가 역시 뒷모습이 보여주는 진실에 매료되었던 것은 아닐까.

 그에 비해 우리의 앞모습은 꾸며진 경우가 더 많다. 특히 성형이 유행인 요즘은 더욱 그렇다.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에 기술의 발전이 더해진 결과 대한민국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일등 성형공화국이다. 지하철과 버스는 성형 효과를 선전하는 사진들로 넘쳐난다. 시술 전과 후의 차이는 마법을 방불케 한다. ‘상해 또는 선천적 기형에 따른 인체의 변형이나 미관상 보기 흉한 신체의 부분을 외과적으로 교정·회복시키는 수술’이라는 ‘성형’의 사전적 정의가 오히려 생경하다. 흉하다는 기준이 상대적일 수밖에 없으니 자신의 모습이 만족스럽지 못하면 고치면 그뿐이다. 부모가 나서서 성형을 시키는 세상이라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말을 운운하기도 우습다. 이제는 입시에서 사진을 통한 본인확인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니까.

 예뻐지고 싶다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이니 뭐라고 탓할 일이 아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만큼 인류의 뿌리 깊은 로망이 또 있을까. 더욱이 외모도 실력이라고 주장하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외모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성형은 생존을 위한 선택일 뿐이다. 게다가 경제위기 속에서도 의료관광과 화장품 산업만큼은 급성장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지 않은가.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할 지경이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그늘도 생기는 법. 성형에 돈이 많이 든다는데, 이제는 성적뿐 아니라 인간의 미추도 재력이 결정한다. 갈수록 돈 없는 사람이 설 땅은 좁아만 간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여전히 성형 열풍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 안에 숨겨진 열등감과 도를 넘는 경쟁의식 때문이다. 예쁘고 화려한 외모 뒤에는 더 예뻐지려는 경쟁의식과 늙어서 추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상존한다. 한 번의 성형으로 자신감과 만족감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지 않으니 한번 성형한 사람은 계속 성형할 수밖에. 그래서 성형산업은 불황을 모른다. 그러나 외모만으로 자존감이나 품격이 생기지 않는 법. 진정 아름다운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에서 나온다. 세월을 견디면서 치열하게 살아온 주름진 얼굴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조각 같은 얼굴에서는 그런 뭉클함을 기대하기 어렵다.

 인생을 살다 보면 결코 잊히지 않는 모습이 있다. 이른 새벽에 출근하던 아버지의 굽은 등이 그렇고 힘들 때 말없이 짐을 나누어 지던 친구의 어깨가 그렇다. 2015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혹시 올 한 해 동안 지나치게 앞모습에만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뒷모습을 조용히 돌아볼 때다. 내가 걸어가는 뒷모습이 누군가에게 추억이 되고 힘과 용기를 줄 수 있기를. 얼굴은 잊혀도 뒷모습은 오래 오래 남게 될 테니까.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