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트럼프의 표현 분석해 보니…언어의 '어두운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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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NYT)가 미국 공화당 대선 레이스에서 1위를 질주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의 ‘화법’을 분석했다. 지난 5개월간 집회, 연설,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쏟아낸 모든 표현을 분석했다. 9만5000개 단어다. 중요한 특징이 드러났다. 트럼프는 전·현직 대통령이나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다른 정치인들에게선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표현들을 사용했다. 품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첫째, ‘분열적 용어’의 반복적 사용이다. 트럼프는 끊임없이 ‘우리’와 ‘그들’을 나눈다. ‘우리’는 선하고, ‘그들’은 나쁘다는 식이다.

둘째, 불안감 조성이다. 트럼프의 언어는 비관적이다. 다른 후보들이 애국심에 호소할 때 그는 대중의 불안감을 자극한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변화, 경제적 불안전성, 흉포한 적들, 마이너리티(minority)의 부상 등에 대해 대중이 느끼는 불안감을 예리하게 건드린다. 그는 ‘문제(problem)’란 단어를 지난주에만 87차례 사용했다. ‘끔찍하다(terrible)’는 20번 썼다.

셋째, 정치적 라이벌이나 반대자들에 대해선 ‘어리석다(stupid)’고 몰아붙인다. 트럼프는 지난주 이 용어를 30번 말했다. “우리는 어리석은 사람들에게 지배되고 있다”는 식이다. 다른 후보들에 대해선 ‘약체(weak)’라고 낙인을 찍는다. 트럼프는 끊임없이 “그들 모두는 허약하다. 정말 약하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자신만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great) 만들 수 있다고 최면을 거는 식이다.

레이스 초반, 가문의 후광을 업고 유력한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도 트럼프의 “젭 부시는 에너지가 부족하다(low-energy)”라는 낙인 찍기에 당했다.

NYT는 트럼프가 언어의 ‘어두운 힘(dark power)’을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의 선동가들 수법을 닮았다는 것이다. 1950년대 미 전역에 매카시즘 광풍을 불러일으킨 조셉 매카시 등이다. 다만 다른 선동가들과 달리 트럼프는 에너지와 카리스마가 넘치는 연사라는 점이 큰 차이점으로 거론됐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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