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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텔 리, 제11회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

중앙일보

입력

3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폐막한 제11회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한국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텔 리(25)가 1위를 차지했다. 이 콩쿠르 50년 역사상 한국인 또는 한국계 연주자 중 최고 성적이다.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는 바이올린 솜씨가 뛰어났다. 바이올리니스트를 할지 작곡가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는 1965년 시벨리우스 탄생 100주년을 기념, 핀란드 헬싱키에서 시작돼 5년에 한 번씩 개최돼 왔다. 제1회 대회에서 러시아의 거장 올레그 카간이 1위에 올랐다. 이후 이 콩쿠르는 빅토리아 뮬로바,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세르게이 하차투리안, 알리나 포고스트키나 등을 수상자로 배출하며 명 바이올리니스트들의 산실로 자리매김했다. 한국인 입상자로는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9회/공동 3위), 한국계 미국인 에스더 유(10회/3위)가 있다.

지난 달 22일부터 이 달 3일까지 헬싱키에서 열린 이번 콩쿠르에는 29개국 234명의 연주자가 참가했다. 총 2차에 걸친 본선을 통해 6명의 결선 진출자를 가렸고, 결선에서는 선택 협주곡과 시벨리우스 협주곡을 연주했다(크리스텔 리의 선택곡은 버르토크 협주곡 2번). 핀란드 방송교향악단과 헬싱키 필이 번갈아가며 연주를 맡았다. 크리스텔 리에 이어 오스트리아의 엠마누엘 체크나보리안(Emmanuel Tjeknavorian)이 2위에, 독일의 프리데리케 스타클로프(Friederike Starkloff)가 3위에 각각 입상했다.

핀란드는 자국 작곡가를 기념한 시벨리우스 콩쿠르에 문화적 역량을 집결시켜 왔다. 핀란드 대통령이 직접 시벨리우스 관련 모든 사업을 총괄하고, 재무부 장관과 문화부 장관도 시벨리우스 관련 단체들과 함께 긴밀하게 협력하며 일한다. 핀란드 국영방송사인 YLE가 일정 전체를 중계하고 기자들은 예선현장부터 상주하면서 분위기를 체크한다.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 기념사업들은 국가 정책적으로 중요하게 다뤄진다. 핀란드 공항부터 바이올린 콩쿠르 안내 프로그램이 있고, 핀란드 각지에 시벨리우스 흔적이 담긴 장소를 소개하는 안내 책자 ‘Path of Sibelius’도 비치돼 있다. 시벨리우스 음악원은 “장(시벨리우스)이 1885~1889년 여기 있었다“는 문구로 학교 광고를 게재했다. 콩쿠르 기간 동안 핀란드 방송 교향악단도 보조를 맞추듯 정기연주회에서 시벨리우스 교향곡 5번을 연주했다.

크리스텔 리는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한국 이주민 부모에게 태어나 5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정경화와 다나카 나오코를, 독일 크론베르크 아카데미에서 아나 추마첸코를 사사했다. 추마첸코는 율리아 피셔, 아라벨라 슈타인바허, 리사 바티아슈빌리, 김수연 등을 키워낸 명교수다.

2003년 금호영재콘서트 독주회를 통해 국내무대에 데뷔한 크리스텔 리는 올해 2월 금호아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가졌다. 2013년 뮌헨ARD 국제음악콩쿠르에서 김봄소리와 1위 없는 공동 2위에 올랐다. 현재 뭔헨국립음악대학에서 수학중이다.

정경화는 크리스텔 리를 ‘자신의 첫 제자’라 말한다. 크리스텔 리가 13세 때 정경화를 처음 만나 7년 동안 배웠다. 이번 시벨리우스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의 매 라운드를 쭉 지켜봤다는 정경화는 “자신의 혼을 모두 불어넣은 집중력 있는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크리스텔은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 특히 집요하게 파고드는 연습 태도가 훌륭하다. 깊이 있게 음악을 추구하는 거장으로의 한 걸음을 뗐다. 정말 대견하다”고 말했다.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과 콩쿠르 창설 50주년이 겹친 이번 대회 2라운드에서는 작곡가들의 신작을 연주했다. 지난해 처음 열린 시벨리우스 작곡 콩쿠르에서 바이올린 부문 1~3위에 오른 작품을 대상으로 했다. 우승작인 한국 작곡가 박현준(26)씨의 ‘Another Cadenza‘는 시벨리우스의 미발표곡을 상상하며 쓴 작품이다. 이번 콩쿠르에서 카나가와 마유미, 요시다 미나미, 낸시 초우, 김봄소리, 리처드 린, 스티븐 카바니, 엘리 서 등 참가자들이 이 작품을 연주했다.

작곡가 박씨는 크리스텔 리의 선택곡(버르토크 협주곡 2번) 연주가 다른 참가자들보다 월등했다며 시벨리우스 협주곡 연주에 대해 “곡을 끌고 나가는 흐름 자체가 워낙 좋다. 오케스트라 반주를 잘 듣는다. 오케스트라와 대화해야하는 부분과 본인이 끌고 나가야 할 부분을 확실하게 아니까 완급조절이 정말 잘 되더라”고 말했다.

크리스텔 리의 상금은 2만5000유로(한화 약 3157만원). 부상으로 연주 기회를 얻었다. 이 달 8일 개최되는 시벨리우스 탄생 15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핀란드 방송교향악단과 무대에 오르고, 헬싱키 필과 두 차례 협연도 예정돼 있다.

류태형 음악칼럼니스트·객원기자 mozar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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