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청와대부터 公私를 구별 못하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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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요즘 청와대를 보면 대통령부터 비서관.행정관, 심지어 하급 직원에 이르기까지 직분에 걸맞은 공직의식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국가 경영의 최고 핵심부인 청와대 관계자들이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지 못하고 친목단체나 향우회같은 처신을 하고 있으니 공직기강이 무너지고 혼란이 만연해지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2주 전 측근인 안희정 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을 청와대로 불러 식사를 같이 한 문제만 해도 그렇다. 당시 安씨는 검찰이 구속영장을 두차례나 청구했다 기각돼 수사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 까지 고락을 같이 한 '동지'가 유독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 대해 盧대통령도 인간인 이상 마음이 아팠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국정의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이 개인적 정리(情理)를 앞세워 처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대통령이 수사 중인 피의자를 불러 격려하는데 검찰이 압력을 느끼지 않고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가 밑으로 내려가면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확대되기 때문에 대통령의 처신은 항상 긴장돼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처신은 무책임하고 신중치 못하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그 이전 수사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도 盧대통령은 安씨를 공공연히 '동지' '동업자'라고 감싸 비판을 받아왔다.그런데도 盧대통령은 청와대 사정팀에 포진한 부산 출신 참모들에게 "희정이에게 잘해주라"고 당부까지 했다니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전형(典型)이라 할 수 있다.

청와대 비서관.행정관들이 가족과 소방헬기로 새만금현장을 시찰하고, 7급 사진사가 개인적 유대로 유출해서는 안될 사진을 공개한 것도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한 때문이다.

대통령은 대통령다운 처신이 있어야 한다. 재야투사나, 야당의원 때와는 다르다. 말 한마디 손짓 하나가 국정 방향에 영향을 주는 최고지도자라는 직분을 다시금 곱씹어 볼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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