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해는 지는데 갈 길 아득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1면

<본선 32강전 B조>
○·펑리야오 4단 ●·나 현 5단

기사 이미지

제15보(172~188)=중앙의 불이 엉뚱한 곳으로 번졌는데도 두 사람 모두 나 몰라라, 딴청이다. 어차피 모닥불 수준의 불장난이고 좌변쪽 72로 시작된 패도 유희에 가깝다.

 좌상일대에 웅크린 흑 대마는 자체로 살아있고 백도 A로 물러나면 그만인데 부담으로 따지자면 그냥 내버려둬도 되는 흑보다는 언젠가는 A로 이어야 하는 백이 무겁다. 이 돌연한 패의 실랑이는 흑이 양보하고 선수를 뽑는 것으로 일단락(75…▲ , 78…72).

 하변 79, 81로 살집이 두툼해진다. 그런데 불리한 것이 분명한 펑리야오는 왜 여기서 ‘참고도’ 백1로 우하귀 흑 2점을 따내지 않을까. 이렇게 되면 역전도 가능할 것 같은데…. 이유가 있다. 79, 81은 느긋하게 덩치만 키우는 수가 아니다. 들판의 양이 한가롭게 풀을 뜯듯 ‘참고도’ 백1이나 두고 있다가는 흑2 이하 8까지 사단이 난다. 이렇게 끊기면 좌변 일대 백 대마의 생사가 위태롭고 하변 흑a로 끊기는 수단까지 남아 견딜 수 없다.

 중앙 82, 84는 비상수단. 어떻게든 B의 곳을 끊어야 뭔가를 도모해 볼 텐데 당장은 여의치 않고 공격은커녕 좌변일대 백 대마의 안위부터 살펴야 하는 처지가 됐으니 그야말로 일모도원(日暮途遠), 해는 지는데 갈 길 아득한 형편이다.

손종수 객원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