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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백년 기다렸다, 붓끝서 꽃이 필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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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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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장면면(歲月藏面面)’ 앞에 선 인영선씨. 서예가로 오늘을 살게 한 부모로부터 스승과 벗, 지인들 이름을 방명록에서 집자 한 뒤 그들을 기억하는 글을 썼다.

취묵헌(醉墨軒) 인영선(69)씨만큼 자호(自號) 그대로인 이도 드물다. 먹과 술과 글에 취해 반백년을 살았다. 경희대 국문학과 시절 스승인 조병화 시인은 “자네가 가까이 오면 먹 냄새가 화악 풍겨”라 했다. 소설가 황순원 선생은 “인군, 글씨 써서 밥은 먹나?”라며 제자 필생(筆生)을 늘 응원했다. 1970년대 중반에 천안에 서실 ‘이묵서회(以墨書會)’를 연 뒤 한자리에서 35년 벼루에 바닥이 날 지경으로 글씨만 쓰고 살았다. 그러고도 취묵헌은 “전대에 들어 보지도 못했고 일찍이 있지 않던 글씨가 과연 나타날 수 있을까” 오늘도 늙은 먹을 간다.

취묵헌 인영선, 천안서 개인전
대학 시절 스승 조병화 시인
“자네 오면 먹 냄새 화악 풍겨”

 20일 천안시 용원리 천안예술의전당(관장 유남근)에서 개막한 취묵헌 칠순 맞이 개인전 제목은 ‘흐르는 물처럼’이다. ‘먹을 갈아 붓을 빌려 늘 그러하기를 빌어본다’는 구절이 든 ‘도법자연(道法自然)’ 앞에서 그는 “늘 그러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감?” 했다. 물처럼 흘러가는 삶을 글씨로 구해온 그에게 가장 그리운 건 산이다. ‘산은 종교다’라 쓴 작품 앞에서 그는 “산이 맑잖어” 한마디 한다. 산의 ‘장엄과 너그러움’ 앞에 그는 말을 잊는다. “종일 산을 타도, 언제 와도, 산은 말이 없어 좋아. 나는 언제 말을 잊은 이와 말을 해보나.”

 취묵헌의 글씨는 함축미 풍부한 글을 품고 있다. ‘어쩌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앞에서 그는 “엊그제 돌아가신 대통령 말씀이여” 눙친다. ‘온갖 꽃들 모여 꿀이 될 때 이 단맛 어느 꽃에서 왔는지 모르겠네’를 가리키며 “내가 만난 최고의 서론(書論)”이라 설명했다. 무슨 법첩에서 따 온 글씨인지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많이 써서 그 모든 법을 갈아 뭉개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취묵헌은 한국 서단에서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자유분방하고 과감한 변화를 추구하는 글씨 세계로 이름났다. 지난해 일중(一中) 김충현(1921~2006) 선생의 서예정신을 기려 제정된 ‘일중 서예상’ 수상자로 선정된 그에게 생전의 일중은 이런 평을 내렸다. “청정무구한 풍격으로 각 체의 연구에 열성을 다했다.” 하영휘 성균관대 교수는 “문인화의 격이 제대로 피어난 드문 경지”라고 취묵헌의 작품세계를 요약했다.

 “늙은 취묵헌에게 무엇이 있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봤지. 그랬더니 ‘붓끝에서 꽃이 필 날은 언제쯤 오려나’란 답이 돌아오데. 아직 멀었는데 달은 황혼이네 그랴.”

 그림을 따로 배우지 않은 그에게 어찌 그리느냐 물었더니 “수십 장 그려 한 장 건졌는데 좀 괜찮은 것 같혀?”하며 독학의 길을 들려줬다. “겸재 정선의 그림이 좋길래 바위는 이런 식으로 하면 되겠구나 하고 죽어라 따라갔다”고 했다. ‘수처작주(隨處作主)’, 어느 곳에서든 주인 되라는 취묵헌의 작품 하나가 우레와 같은 침묵으로 관람객을 맞는다. 전시는 12월 13일까지. 1566-0155.

천안=글·사진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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