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너무 꽉 찬 서울, 도시에 침을 놓듯 공원·광장 늘려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기사 이미지

왼쪽부터 서울의 도시 실험을 위해 모인 도시 건축가 호르헤 페레즈(콜롬비아 메데인), 호세 아세빌로(스페인 바르셀로나), 승효상(서울).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381명(1992년) vs 19명(2015년).’

승효상·페레즈·아세빌로 대담
함께 누리는 공간 많아져야 활력
더하지 말고 비우는 작업 필요
바르셀로나도 ‘도시 침술’로 바꿔
재생에 앞서 생활패턴 잘 관찰해야

 한 도시에서 살인 사건으로 사망한 사람의 숫자 변화다. 인구 10만 명 당으로 봤을 때다. 총 인구 수는 264만 명. 한때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알려졌던 남미 콜롬비아 메데인시의 이야기다. 도시의 치안 유지를 위해 메데인시가 공권력을 동원한 엄청난 방법 대책을 세운 것은 아니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 가장 아름다운 건물을 가장 낙후한 산동네에 짓고 있을 뿐이다.

 새롭게 들어선 건물은 도서관, 학교 등 모두 공공건물이었다. 산동네와 중심가를 잇는 옥외 에스컬레이터, 케이블카도 설치했다. 집까지 가기 위해 매일 한 시간 넘게 등산해야 했던, 15만 명에 달하는 산동네 사람들의 시내 접근성이 높아졌다. 분열됐던 도시는 10여 년에 걸쳐 조금씩 통합되기 시작했다. 이 모든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메데인시는 건축가와 도시계획가를 먼저 투입했다.

 서울을 수도로 한 우리 도시의 모습은 어떨까. 메데인(호르헤 페레즈 도시계획디렉터), 스페인 바르셀로나(호세 아세빌로 전 도시사업 디렉터), 서울(승효상 총괄건축가)의 도시 건축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2017년 서울에서 처음으로 개최될 서울도시건축국제비엔날레(SIABU)를 앞두고 최근 열린 심포지엄 ‘서울의 도시 실험’을 위해 방한했다.

기사 이미지

메데인시는 산동네에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하고 공원과 시민회관 등 공공 공간을 늘렸다(사진 시계방향으로). [사진 서울시, 호르헤 페레즈]

 전문가들은 만남에 앞서 세운상가-종묘-낙산을 잇는 서울의 세로축을 둘러봤다. 서울의 단면을 고스란히 볼 수 있는 루트다. 낙산에서 서울을 바라본 페레즈는 “너무 많은 것이 혼재돼 이를 통제하는 게 몹시 어렵고 복잡한 도시”라고 진단했다. 아세빌로는 “고지도에서도 볼 수 있는 산과 강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지형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승효상을 포함한 세 도시 건축가는 모두 ‘도시 침술’ 요법을 서울에 처방했다.

 -‘도시 침술’이 뭔가.

 ▶페레즈=침을 놓듯, 작은 규모의 공간을 만들면서 도시를 바꿔 나가는 작업이다. 메데인시의 경우 시민들이 공공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가난한 주민이 사회에 소속감을 느끼려면 공공공간이 많아져야 했다. 에스컬레이터 정류장마다 침 놓듯 커뮤니티 공간을 만들었더니 주변에까지 활력이 생겼다.

 ▶아세빌로=바르셀로나는 도시 침술을 처음 시작한 도시다. 부분적으로 개선된 효과를 전체로 파급·확산시킨다는 전략이다. 이 방법을 써서 도시 재생에 성공했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전후로 도시 건축가로 있으면서 7년 만에 158개의 공공공간을 만들었다. 도시에 활력을 주려면 공원·광장 등 시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공공공간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

 - 이 처방전을 서울에 적용한다면.

 ▶아세빌로=도시가 이미 차 있기 때문에 도시건축가로서 이런 공공공간이 계속 생겨날 수 있도록 도시를 비워나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 더하지 말고 빼라.

 ▶페레즈=사람들이 걸어 다니며 접근할 수 있는 작은 공원이 더 필요하다. 도시 구석구석을 걸어서 접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승효상=도시의 가능성은 대형 건물이나 랜드마크에 있지 않다. 하지만 지금껏 정치적인 이유로 강조됐다. 시민이 도시에서 행복하려면 일상생활의 공간과 시설이 좋아져야 한다. 아주 흔한 도로, 가로변, 난간 등이 얼마나 잘 디자인되고 연결되는지가 중요하다.

 - 서울에서는 ‘도시재생’이 화두다.

 ▶아세빌로=바르셀로나 포블레노우 산업단지는 옛 공장지대를 지식집약형 첨단산업단지로 탈바꿈하는 재생 프로젝트를 했다. 그 비결은 사무·상업·주거·문화·교육 공간 등 모든 도시의 기능을 잘 섞어 넣은 데 있다. 한가지 기능만 살려선 안 된다. 재생에 앞서 도시민의 복잡한 생활부터 잘 관찰해야 한다.

 ▶페레즈=공공 인프라를 만들기 위해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 메데인시는 10~20%의 땅을 소셜 하우징에 썼다. 가난한 도시민도 도시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교육·건강·문화적 혜택을 평등하게 누릴 수 있게 포용해야 한다.  

글=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