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文제안 받든 안받든 골치 안철수 ‘문 밖’서 고민 중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54호 7 면

‘철수(撤收) 정치’라는 비아냥을 털어내고 정치인 안철수는 과연 과감한 승부수를 던질 수 있을까. 사진은 지난달 30일 한국외대에서 열린 토크쇼 ‘신나는 잡담’에 출연한 안 의원. [중앙포토]

“받아도 골머리, 안 받아도 골머리다.”(안철수 의원 측 관계자)


 “탈당도 할 수 있지 왜 못해? 막 나가야지, 안 그러니 이것들(문재인 측)이 제멋대로 하잖아.”(안철수 의원 측근인 문병호 의원)


 안철수 의원이 장고 중이다. 18일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안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이 참여하는 ‘3인 공동 지도 체제’, 이른바 ‘문(文)·안(安)·박(朴) 연대’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내년 4월 20대 총선까지 함께하는 5개월짜리 임시지도부다. 이와 함께 문 대표는 안 의원의 혁신안에 대해서도 “백번 옳은 얘기”라며 맞장구를 쳤다. “너무 지나치게 혼수를 요구한다”며 안 의원을 비난했던 최재성 총무본부장도 고개를 숙였다. 안 의원을 끌어들이기 위해 문 대표가 전방위로 나서는 형국이다.


 제안 이튿날 박 시장은 곧바로 동참의 뜻을 표했다. 반면 안 의원은 나흘째 묵묵부답이다. 안 의원의 답변이 늦어질수록 “‘문·안·박 연대’가 무산될 것”이란 관측이 높아지고 있다. 안 의원 주변에선 “(문 대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80% 이상”이라는 반응이다.

“같은 편끼리 무슨 연대냐” 비난‘문·안·박 연대’ 제안으로 새정치연합의 내홍은 잦아들기보다 기름을 부은 꼴이 됐다. 제안에서 소외된 최고위원들은 “선출직이 무슨 핫바지인 줄 아느냐”며 격앙된 반응이다. 주승용 최고위원은 20일 최고위원회에서 “문 대표의 독단적 결정”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오영식 최고위원은 회의에 아예 참석하지 않고 ‘보이콧’했다. 박지원 의원은 “영남 패권, 호남 소외를 가중시키는 구상”이라고 일갈했다.


 설왕설래가 많지만 키를 쥐고 있는 이는 안 의원이다. 제안을 받아들이면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3인 체제’는 탄력을 받으며 구심력을 갖게 된다. 반대로 거부할 경우엔 문·안 양측 모두 내상을 입거나, 최악의 경우 물러설 수 없는 한판 대결을 벌여야 할 처지다.


 안 의원은 왜 머뭇거릴까. 민주당 대선평가위원장을 지냈던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안 의원으로선) 문 대표의 제안에서 다급함만 보일 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당 체질 개선이 실현될 수 있다면야 왜 마다하겠는가. 하지만 진척된 방안이 없다. 제안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안 의원이 시한부 공동대표가 된다 한들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실상 문 대표 체제를 인정하고, 공천권 지분을 얻는 것에 불과할 뿐”이라고 내다봤다. 과거 안 의원의 책사였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역시 “국민에겐 ‘문·안·박 연대’가 기득권 나눠먹기로 인식될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허상이며 정치적 졸작”이라고 비판했다. “연대라는 건 외부 세력과 하는 거다. 친박과 비박, 즉 김무성과 서청원이 갑자기 연대한다고 하면 우스운 꼴 아닌가. 같은 편끼리 무슨 연대를 하겠다는 것인지 빈약한 정치적 상상력만 드러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안 의원도 이미 3년 전 단일화 과정에서 충분히 학습하지 않았나. 이번엔 들러리를 서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어설프게 연명하느니 승부 할 것” 전망도문 대표의 제안을 거부한다면 안 의원의 다음 수순은 무엇일까. 실제로 안 의원이 고민하는 것도 이 지점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문·안·박 연대’ 자체가 놀랄 만한 제안도 아니며, 지난해부터 야권 일각에서 꾸준히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단지 제안을 수용하고 거부하는 수준에 그치질 않을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방향성과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복안 등 전체적인 청사진을 내놓을 것”이라고 전했다.


 예상되는 안 의원의 시나리오는 우선 ‘조건부 수용’이다. 누차 강조해온 ‘낡은 진보 청산’과 관련해 문 대표가 구체적인 행동을 보이면 그걸 보고 난 뒤 공동지도부에 들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논의의 가능성은 열어놓는 것이지만 어정쩡한 모양새를 취하며 말만 핑퐁처럼 오가다 보면 자칫 피로감을 줄 수 있다.


 강펀치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이미 안 의원 주변에선 “특단의 대책”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다. “내년 총선에 불출마하겠다. 나부터 백의종군하겠다. 그러니 문 대표도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대표직을 내려놓으라”는 식의 강력한 역제안을 내놓는 것이다. 국면을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면서 “이걸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이 문 대표와는 함께할 수 없다”며 탈당의 명분도 자연스레 쌓게 된다. 호남을 비롯한 당내 비주류의 수장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질 기회도 얻게 된다.


 문제는 결단력이다. 과거에도 갈등이 극단에 이를 때마다 안 의원은 이를 정면 돌파해내기보단 우회의 길을 선택하곤 했다. <그래픽 참조> 배짱 있게 밀고 나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시선이다. 이와 관련해 안 의원의 한 측근은 “예전보다 독해졌다. 사실상 벼랑 끝으로 몰리지 않았나. 어설픈 국회의원으로 연명하느니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보여줄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편으론 자칫 삐끗했다간 안 의원에겐 그나마 남은 정치적 영향력마저 고갈될 수 있다. 무엇보다 현재 시점이 명운을 걸 만큼 결정적 시기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윤여준 전 장관은 “‘문·안·박 연대’가 과연 파괴력을 가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제안의 수용 여부가 핵심이 아니다. 정치인 문재인과 동행하느냐, 갈라서느냐가 안 의원에겐 본질적 문제다. 더 이상 회피할 시간이 없다. 답을 내려야 할 때”라고 전했다.


안철수, 이번 주 초 입장 밝힐 듯일각에선 안 의원이 ‘문·안·박 연대’를 수용해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은 “문 대표가 크게 양보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안 의원도) 통 크게 받아들이고 힘을 합쳐야 한다. 셋이 합쳐도 새누리당 이기기가 버겁다. 마땅한 대안도 없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과거 안 의원 보좌관을 지냈던 서양호씨 역시 “친노-비노라는 허구적 구도와 계파 온상정치를 무너뜨리기 위해선 대권주자 3인방이 전면에 나서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의 방안”이라고 주장했다. 문희상·이석현·김성곤 의원 등 당내 3선 이상 의원 18명 역시 “문·안·박 체제 제안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안 의원은 23일이나 24일께 ‘문·안·박 연대’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최민우·추인영 기자 minwo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