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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 들려드릴까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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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4호 14면

12일 서울 연희동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열린 ‘연희목요낭독극장’. 문학에 극적 요소를 더한 ‘문학공연’에서 시구는 대사가 되고 화자는 극의 주인공이 된다. 조명·음향도 문학을 깊이 이해하는 도구가 됐다. 최정동 기자

본디 글에 앞서 말이었다. 말로 읊던 이야기가 소설이 됐고, 노래는 시가 됐다. 말을 옮겨 적은 글을 음성으로 읽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눈으로 글을 훑는다. 독서는 소리 없는 고독한 작업이 됐다. 바쁘고 피곤한 사람들에게서 독서는 멀어졌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3 국민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한국 성인의 연간 독서량은 평균 9.2권이었다. 한 달에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러한데 소리 내어 책을 읽는다는 건 여유롭다 못해 한가한 소리로 들릴 터다. 하물며 가만히 앉아 읽는 소리를 듣고 들려주는 낭독회는 호사스러울 지경이다. 그러나 책을 읽지 않는 시대, 낭독(朗讀)은 책으로 다시 다가가는 길이다. 낭독회에선 시도, 소설도, 수필도, 실용서도, 심지어 작가를 꿈꾸는 이들의 습작도 읽는다. 낭독자의 호흡과 떨림은 글에 리듬을 얹고 소리의 울림은 글을 마음에 새긴다. 더불어 읽는 이와 듣는 이가 함께하니 어떤 글이든 끝내 읽고 말게 된다. 낭독회가 공독(共讀)의 장이 되는 것이다.?

카페 성수’에서는 4개의 낭독 모임이 운영 중이다. 한 권을 100번 읽는 ‘백독회’(1)와 소설 낭독 모임이 초청한 오정희 작가와의 만남(2). [사진 카페 성수]

지난 10일 서울 성수동에 있는 ‘카페 성수’. 공장 거리에 있는 낡은 주택을 개조한 이곳에 스무 명이 모였다. 소설가 오정희씨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독자들이었다. 등단 반세기를 바라보는 작가의 독자는 수도 없이 많겠지만 이날은 특별했다. 두 달에 걸쳐 오씨의 소설 『바람의 넋』을 낭독으로 완독한 이들이 작가를 초청한 자리였다. 매주 소리 내어 한 구절 한 구절 읽었다는 이들은 “혼자 읽었다면 중도에 포기했을지 모르는데 낭독이라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말 없이 카톡으로 소통하는 시대에 좋은 글로 발성(發聲)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의미 있었다”는 ‘낭독 예찬’을 내놓았다. ‘카페 성수’에는 네 개의 낭독 모임이 있다. 각각 소설과 역사·인문학 서적을 읽는 ‘낭독 시크릿’, 한 권의 책을 100번 읽는 ‘백독회’, 오감으로 읽는 ‘입체 낭독’이다. 요즘 ‘백독회’에선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을 세 번째 읽고 있다. 카페의 낭독 모임을 담당하고 직접 참여도 하는 박경호씨에게 같은 책을 100번 소리 내어 읽는 것의 쓸모를 물었다. 그는 “처음엔 읽느라 바쁘고, 두 번째엔 곱씹을 만한 의미를 찾았고, 세 번째가 되니 정확하게 읽게 된다”고 했다. 반복해 읽은 글이 몸과 마음에 새겨지고 온전한 내 것이 된다는 얘기다. ‘입체 낭독’은 글을 읽으면서 등장하는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감상하는 등 공감각적 독서를 하는 시간이다.


이처럼 낭독은 시에서 산문으로 영역을 확장했을 뿐만 아니라 그 형식까지 진화시켰다. 서울문화재단의 창작 지원 공간인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열리는 ‘연희목요낭독극장’도 그렇다. 2010년 시작한 낭독극장은 문학에 음악·무용·연극 등 다양한 장르를 결합했다. 12일 열린 극장에선 홍사용 시인의 산문시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무대에 올랐다. 시를 낭송하는 대신 극으로 재창조해 들려줬다. ‘맨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 것이 무엇이냐/ 맨 처음 어머니께 받은 것은 사랑이었지요마는 그것은 눈물이더이다….’


시구는 대사가 되었고 시의 화자는 주인공이 되어 무대를 뒹굴며 괴로워했다. 주인공의 심리에 따라 조명이 바뀌었고 음악도 달라졌다. 이날 극장엔 60여 명의 관객이 1시간 동안 이어지는 ‘낭독회’를 감상했다. 입체적 낭독은 문학과 독자의 거리를 좁히는 역할을 했다. 김진하씨는 “시에 등장하는 의성어가 몸짓과 함께 표현되니 시인이 말하고자 한 것이 잘 와닿았다”고 했다. 박현미씨도 “극 중 노래와 연기 덕분에 시를 재미있게 접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내용 토론 없이 오로지 읽을 뿐『낭독은 입문학이다』의 저자 김보경씨에 따르면 “낭독은 깊이 있는 독서를 돕는 안내자”다. 그는 2009년 처음 낭독 모임을 만들었고, 신촌에 문학다방 ‘봄봄’을 만들어 ‘북코러스’라는 이름으로 12개의 낭독 모임을 꾸리고 있다. 이유는 “혼자서는 끝내기 어려운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기 위해서”였다. 낭독이 문학의 것만이 아니라는 의미다. 6년간 『부의 미래』 『총·균·쇠』 『서양미술사』 『코스모스』 등을 읽었다. ‘어려운 책’을 읽지만 내용을 토론하거나 글쓰기 방법을 논하지 않는다. 오로지 책장을 넘기며 함께 소리 내어 읽을 뿐이다. 김씨는 보다 실용적인 낭독의 효용을 들려줬다. “두껍고 어려운 책을 끝냈다는 자부심이 생기고, 상대가 더듬거려도 귀담아 듣는 배려가 생긴다”는 것이다.

‘읻다 낭독회’ 포스터.

고전평론가 고미숙씨도 소리 내어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낭송의 달인-호모 큐라스』를 출간한 그는 낭송을 “소리로 글을 몸안에 새겨 몸이 곧 책이 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흔히 하는 묵독(默讀)은 오히려 독서 수준을 떨어뜨린다. “묵독은 내용을 따라 읽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를 못하는 책은 영원이 읽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소리로 읽는 건 아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몸과 지식이 접속하면 읽는 것 자체가 공부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고씨의 말처럼 “몸과 지식이 접속하는” 직관적 독서를 가능케 하는 낭독 모임도 있다. 매달 서울 망원동의 작은 서점 ‘책방 만일’에서 열리는 ‘읻다 낭독회’다. 어렵고 안 팔리는 책을 출판하기 위해 번역·편집·디자인 등 20~30대 출판업 종사자가 모여 만든 ‘다 프로젝트’가 주관하는 낭독회다. 한국어로 출판된 작품도 낭독하지만 ‘읻다 낭독회’의 가장 큰 특징은 원어 낭독을 한다는 점이다. 프란츠 카프카,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파울 첼란 등의 작품을 통?번역가들이 원어로 읽어준다. 독일어·프랑스어 번역가로 낭독을 하는 최성웅씨는 “외국어를 알아듣는 전공자도 있고, 막연한 느낌만으로 참여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낭독이 무슨 의미일까 싶지만 그는 “훌륭한 작가에겐 문체가 곧 자신의 리듬이고 호흡”이라는 말로 답했다. 물론 전공자일 경우 원어 낭독은 훨씬 도움이 된다. 최씨는 “500번을 읽어도 알 수 없었던 독일어 시를 시인이 직접 낭독한 녹음을 듣고는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는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연극계선 신진 작가 발굴 기회로 활용 연극계에선 낭독이 작업의 일부로 폭넓게 활용된다. 지난달 LG아트센터에선 연극 ‘살짝 넘어갔다 얻어맞았다’ 개막을 앞두고 대본 낭독회가 열렸다. 배우들이 앉아서 목소리만으로 연극의 일부만 연기하는 행사인데도 50명 좌석이 30초 만에 매진됐다. LG아트센터 홍보팀 오경은씨는 “새로운 작품을 제작했을 때 홍보 수단으로 낭독회가 활용된다”며 “관객들도 배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새로운 느낌으로 연극을 접할 수 있어 좋아한다”고 했다.


아예 낭독극도 열린다. 남산예술센터는 지난 8월 낭독공연 축제 ‘남산희곡페스티벌, 다섯 번째’를 열었다. ‘희곡의 발견과 낭독의 즐거움’을 슬로건으로 내세운 공연이었다. 낭독극에선 무대장치도 없고 대사를 제외한 모든 요소가 ‘지문 낭독’을 통해 전달된다. 그런데도 ‘남산희곡페스티벌’의 객석은 꽉 찼다. 남산예술센터 우연 극장장은 “대사를 제외한 모든 요소를 제외시킨 낭독극은 작품이 완성되는 중간 점검”이라고 설명했다. 미완이지만 연극을 무대에 올리는 데 필요한 과정인 셈이다. 그는 “중간 시연을 통해 극작가나 연출가는 관객의 반응을 살펴 더 작품을 발전시킬 수 있다”며 “관객도 참여했다는 즐거움을 얻고, ‘보는 연극’보다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매력 때문에 낭독극을 찾는다”고 말했다. 또 “창작극이 바로 실연(實演)으로 무대에 오르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낭독 공연이 신진 극작가를 발굴하는 기회도 된다”고 덧붙였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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