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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이슈] 전쟁과 테러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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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연쇄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최소 129명이 숨지고 35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기관총과 자살 폭탄으로 무장한 이슬람국가(IS)의 테러리스트들이 저지른 만행입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이번 테러는 전쟁 행위”라고 규정했습니다. 군인들끼리 싸우는 전쟁이 아닌, 무고한 시민을 상대로 한 무차별적 살육 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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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테러가 발생한 프랑스 파리 11구 볼테르 가에 위치한 공연장 바타클랑 극장의 모습. 2. '스타드 드 프랑스' 경기장에서 관중이 경기 직후 급하게 탈출하고 있다.]

파리가 테러의 주요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프랑스가 시리아 등에서 이슬람 성전주의자(지하디스트)들과 싸우고 있어서입니다. 지난 8월 암스테르담발 파리행 열차에서 모로코 출신 이슬람 극단주의자가 총기를 난사한 사건 이후 프랑스의 시리아 공습이 시작됐습니다. 또 서방 세계에서 무슬림(이슬람교도)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기도 하죠. 이번 파리 테러 이후에도 프랑스는 IS의 핵심 군사 시설에 폭격을 퍼붓고 있습니다. 테러와 전쟁이라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중입니다.

인류는 테러라는 새로운 형태의 위협에 직면했습니다. 테러는 전쟁과는 달리 선전포고도 없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벌어질지 예측도 불가능합니다. “인류가 전쟁을 전멸시키지 않는다면, 전쟁이 인류를 전멸시킬 것이다”라는 존 F 케네디의 말이 결코 가볍게 들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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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현지시간) 프랑스 알리베르가에서 구조대원들이 테러 희생자들을 옮기고 있다. 이곳에선 15명이 숨지고 10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

“신 믿느냐 프랑스인이냐” 물으며 15초마다 1명씩 사살

평화롭던 프랑스 파리의 ‘13일의 금요일’ 저녁이 ‘피의 금요일’로 변하는 데는 세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IS 소속 3개 테러 그룹은 파리의 공연장과 식당, 축구경기장 등 8곳을 동시 다발적으로 공격했어요.

가장 먼저 테러가 발생한 곳은 파리 동북쪽 외곽의 ‘스타드 드 프랑스’ 축구경기장이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의 친선경기가 열려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을 비롯한 관중 8만여 명이 모여 있었죠.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당시 문을 연 이 경기장은 알제리 이민자 출신인 지네딘 지단이 프랑스에 첫 월드컵 우승을 안겨주며 ‘통합의 상징’으로 떠오른 곳입니다. 경기 시작 15분 뒤인 9시 20분 자살폭탄 조끼를 입은 테러범 1명이 경기장에 진입하려다 몸 수색으로 폭탄 조끼를 입은 사실이 발각되자 폭탄을 터뜨렸습니다. 폭발로 행인 1명이 숨졌어요. 올랑드 대통령은 폭발음이 들리자 급히 피신했죠. 10분 뒤 경기장 인근 식당에서도 두 건의 자폭 테러가 발생했으나 테러범 두 명만 죽고 희생자는 없었습니다.

비슷한 시각인 9시 25분부터 15분 동안 식당 네 곳에서 총기 난사사건과 자폭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테러범들은 파리 10지구의 캄보디아 레스토랑 ‘르프티 캉보주’에서 식사하던 시민들을 향해 총을 난사해 15명을 살해했습니다. 인근 11지구 볼테르 대로의 식당 2곳에서도 총기 난사사건이 발생해 24명이 숨졌어요.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곳은 1500명의 관객이 모인 파리 11지구의 바타클랑 극장이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의 록 그룹 ‘이글스 오브 데스 메탈’ 콘서트가 열려 관객들은 흥겹게 춤추며 공연을 즐기고 있었어요. 9시 40분쯤 갑자기 총소리가 들렸고, 테러범들이 프랑스어로 “너희들이 시리아에서 우리 형제들을 죽여서 우리가 이 자리에 왔다.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쳤습니다. 이들은 휴대전화를 꺼내는 사람들을 주요 타깃으로 15초 간격으로 한 명씩 죽였습니다. 한 칠레인은 “괴한이 나에게 ‘신을 믿느냐? 프랑스 사람이냐?’ 물어 칠레인이라고 답했더니 풀어줬다”고 말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꼼짝 않고 시체처럼 누워 있던 목격자도 있었고, 일부 관객은 비상 탈출구를 통해 달아나려다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2시간 40분 동안의 인질극은 14일 자정을 넘겨 경찰이 공연장에 진입하면서 끝났습니다. 두 명은 폭탄 벨트를 터뜨려 자살했고, 나머지 한 명은 경찰에게 사살됐습니다. 여기서만 89명이 숨지며 대참사는 막을 내렸습니다. 2015년 11월 16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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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투안 레리가 자신의 SNS를 통해 테러범들에게 보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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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파리 테러로 숨진 엘렌 레리(오른쪽)와 그의 남편 앙투안 레리.]

?IS 당신들에게 내 증오를 주지 않겠다?

파리 테러로 아내를 잃은 한 남성의 편지가 전 세계인들을 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프랑스 저널리스트인 앙투안 레리입니다. 그는 테러범들에게 쓴 편지에서 “당신들은 내겐 너무 특별했던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고 슬픔을 내비칩니다. 하지만 “당신들은 내 분노와 미움을 간절히 얻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증오에 증오로 답하는 행위는 당신들의 무지한 행동과 다를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죠. 이어서 “난 더 이상 당신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매일 그랬던 것처럼 아들과 밥을 먹고, 시간을 함께 보낼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이 아이의 자유로운 삶이 언젠가 당신들을 괴롭게 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죠. 17일 현재 그의 글은 SNS에서 10만 회 이상 공유됐습니다. 11월 18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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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테러 현장에는 추모 행렬이 줄을 이었다.]

한국인 무슬림 마호메트 리 “테러 나쁘지 않나, 택시 기사가 내게 따져”

“택시를 타면 기사가 대뜸 ‘테러는 나쁜 거잖아요?’라고 물어요. 무슬림이면 모두 테러리스트라고 생각하나 봐요.” 무슬림이자 한국인인 마호메트 리(41)씨의 말입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무슬림의 수는 13만5000여 명에 달하는데요. 파리 테러의 배후가 극단주의 무장단체 IS로 지목되면서 이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 무조건적으로 무슬림을 배척하는 ‘이슬람포비아(이슬람 혐오)’ 현상이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한국 최초의 이슬람성원인 서울중앙성원을 찾은 무슬림들도 불안감을 내비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파키스탄 출신인 카와자(42)는 “18살 먹은 아들이 학교에서 차별을 당할까 걱정된다”고 말했죠. 압둘 라프(32) 역시 “파리 테러 같은 일이 생기면 주변 시선이 의식돼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전했습니다.

일부 인터넷과 SNS 공간에는 이슬람포비아가 확산될 조짐이 보입니다. 파리 테러를 다룬 기사에 댓글을 단 한 누리꾼은 “정상적인 사람도 이상하게 만드는 게 이슬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다른 네티즌은 “평범해 보이는 무슬림 속에도 테러리스트의 사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죠. 실제로 지난 1월 파키스탄 출신의 유학생을 ‘테러단체에 소속된 인물’이라고 신고한 e메일이 접수돼 경찰이 수사에 나서는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슬람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다수의 무슬림들이 인도네시아·방글라데시 등의 국가에서 평화를 지키며 살고 있단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2015년 9월 1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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