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의 말 한마디 믿을 수 있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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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나라가 어려울 때일수록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사회 원로의 목소리가 그리운 법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역사의 굴곡마다 나름의 목소리를 냈던 분이다. 그가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여러 문제를 솔직하게 얘기했다.

그는 지금 한국의 상황을 망망대해에서 태풍을 만난 배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난국 타개를 위해서는 선장으로서 노무현 대통령이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의 신뢰성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면서 "취임 1백일 정도가 지나면 나아지리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못하며 언제쯤 좀 나아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金추기경의 이러한 인식에 동감을 표시한다. 사실 지금 태풍을 만난 배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선장의 리더십이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하면 비판 언론만 탓하는 것이 새 정부의 현실인식이었다. 대통령에 대해서는 적나라하게 비판하기가 쉽지 않은 법이다. 또 집권 후 시간이 흐를수록 대통령에게 충고하기가 어렵다. 우리는 金추기경의 쓴소리가 잔소리로 치부되지 않기를 바란다.

金추기경은 한.미 관계의 중요성 등을 역설하며 "대북문제에서도 국민이 한 목소리를 내야 힘이 실린다"고 충고했다. 현안에 대해서도 "노조에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은 수습책이 아니다""특검을 허락했으면 그대로 가도록 해줬어야 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우리는 金추기경이 어떤 의도를 갖고 이런 말을 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대통령은 싫어하는 신문도 읽어야 한다"는 당부도 마찬가지다. 국가 원로의 사심 없는 충언을 수용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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