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파업시대] 3. 피해자는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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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은행의 파업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

닷새간의 파업으로 조흥은행이 심한 상처를 입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우선 파업기간 중 무려 5조4천억원의 예금이 빠져나갔다. 파업 종결 후 2조원 가까이 예금이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1백% 원상복구된다는 보장은 없다.

더 심각한 상처는 고객으로부터의 불신이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상무는 "은행은 서비스업이다. 한번 고객이 등을 돌리면 다시 붙잡기 힘들다"고 말했다.

은행가에서 '한번 고객은 영원한 고객'이란 말은 통하지 않는다. 이미 파업 중 나타나기 시작했던 고객이탈 조짐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조흥은행 통장으로 월급을 받는데 이젠 바꾸려고 합니다. 합병 뒤 언제 다시 노사갈등이 불거질지 모르고, 그 때마다 돈이 없어 쩔쩔맬 수는 없잖아요. "( 조흥은행을 주거래로 이용해온 회사원 김철호(34)씨)

"고객을 무시하고 자기 밥그릇 챙기는 조흥은행에 입금돼 있는 돈을 모두 옮기겠다. "(조흥은행 노조 홈페이지에 남긴 한 네티즌의 글)

기업도 마찬가지다. 전기기기를 생산하는 한 중견업체는 파업기간 중 수출대금을 못받고, 다른 은행에서 돌아오는 어음을 결제하는데도 애를 먹었다. 신용장 개설과 외환거래도 늦어졌다. 이 회사 임원은 "불과 며칠이지만 중소기업은 한번 외국 바이어와의 신뢰관계가 무너지면 회복하기 힘들다"며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했다.

한두건의 피해사례지만 이들이 쌓이면 결국 우리의 산업경쟁력을 갉아먹게 된다. 또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으로 돌아갈 수 있다. 빈번한 노사분규가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오는 28일부터 파업을 예정하고 있는 철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철도노조는 "고속철도 건설에 들어간 부채 11조원과 철도의 적자 2조원을 정부가 인수해 메워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메우라는 것은 곧 국민의 세금으로 해결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건설교통부 고위 관계자는 "노조가 도덕적 해이를 넘어 철도산업을 볼모로 국민을 협박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도 노조와 정부의 협상이 예상된다. 만약 정부가 철도노조의 요구사항을 그대로 들어주게 되면 어떻게 될까.

청와대 관계자는 "철도구조개혁이 미뤄지면 공공부문에 대한 외국인 투자 유치는 어렵게 된다"고 예상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구조개혁의 일관성이 흔들리는데 뭘 믿고 투자하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철도노조는 물러설 기미가 없다. 사정이 이쯤 되자 건교부는 지난 4월 철도노조와의 협상에서 노조 재산 80억원에 대한 가압류를 풀어준 것을 내심 아쉬워하고 있다.

"가압류를 풀어주자 그 돈으로 이번 파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 돈으로 신문광고도 내고 파업비로 쓰고…. 선의를 베풀었는데 칼이 돼서 돌아온 겁니다. "(건교부 관계자)

초반에 노조에 느슨하게 대응하던 정부가 계속 수세로 몰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와 관련,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여론을 수렴해 노동문제의 실상을 정확하게 진단해 정부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 확실한 움직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파업하는 노조에 정부는 퍼주기만 한다는 여론의 질타가 나오는데도 정부는 오히려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서운해하고 있다.

이를 두고 재계는 파업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불분명한 데다 확실한 대응책도 내지 않는다고 불만이 크다. 23일 경제5단체장들의 모임에서 "노사문제가 지금처럼 원칙없이 처리되면 공장 문을 닫거나 해외로 이전하겠다"는 공격적인 발언이 나온 것도 그런 맥락이다.

국내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가겠다는 판국에 외국 기업의 투자유치를 호소할 여지는 더욱 좁아지게 된다. 이 경우 기업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일자리가 줄어들면 결국 노조에도 타격이 온다.

지금의 '줄파업'이 모두가 이익이 되는 윈-윈 게임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패자(敗者)로 만들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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