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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NIE] 동아시아 패권 노리는 일본의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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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력 강화, 독도 야욕…일본 우경화 왜

지난 2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첫 한일 정상회담이 열렸다. 3년 6개월 만이다. 그동안 한일 관계는 독도 관련 망언, 역사 왜곡 등 일본의 우경화 행보 때문에 최악의 상황이라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악화 일로를 걸었다. 이 가운데 양국 정상은 정상회담을 통해 “조기 타결을 목표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교섭을 가속화 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원칙만 확인했을 뿐 일본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명확한 사과와 구체적인 해결 방법은 언급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교 전문가들은 “경색된 한일 관계를 풀고 대화의 물꼬를 텄다는 것 자체가 유의미한 성과다”고 평가한다. 각종 연구 자료와 언론을 통해 일본 우경화의 배경과 한일 관계의 지향점에 대해 알아봤다.

쟁점과 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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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을 거두고 아베 신조가 총리로 취임하면서 일본의 우경화 흐름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아베 총리는 자민당 내에서도 강경보수파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우익 정치인이다. 아베 총리를 필두로 한 일본 자민당의 국가 전략은 ‘강한 일본’으로 집약된다. 핵심은 ‘전후 체제 탈피’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망가진 국가적 자존심을 회복하고 중국에 내준 아시아 패권국의 지위를 다시 회복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지난 9월엔 제2차 세계대전 후 만들어진 일본 헌법, 일명 ‘평화 헌법’ 수정의 첫 단계로 안보법을 개정했다. 일본은 동맹국의 영토에 자위대를 파견해 군사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독도 관련 망언과 침략 전쟁 부인,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왜곡은 이런 일본 우익 세력이 추구하는 국가 전략의 연장선에서 바라봐야 한다. 이번 일본의 안보법 개정이 미국의 요청과 승인 아래 이뤄졌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사실이다.

일본 우경화 이해를 돕는 시사 키워드

잃어버린 20년=90년대 초반 거품경제 붕괴 후 만성적인 디플레이션(물가의 지속적인 하락)으로 인해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지속했던 일본의 장기 불황. 장기 경제 불황으로 2010년 일본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는 비중은 5.8%로 떨어졌고, 세계 2위 경제 대국 지위도 처음으로 중국에 내줬다.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기 부양책. 과감한 금융 완화, 엔화 평가 절하, 인프라 투자 확대 등 통화 공급 확대 중심 정책. 시장에 막대한 통화를 공급함으로써 디플레이션을 막고 경기를 다시 부양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평화 헌법=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일본이 1946년 11월에 공포한 헌법 9조. 승전국인 미국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사실상 일본의 군대 보유를 금지함으로써 전쟁과 무력 사용을 제한했다. 지난 9월 일본은 평화 헌법과 관련된 11개의 법률을 제·개정함으로써 자위대의 무력 행사가 가능하도록 길을 열었다.

야스쿠니 신사=일본이 벌인 청일전쟁·러일전쟁·만주사변과 제2차 세계대전 등에서 숨진 246만여 명의 위패가 안치된 곳으로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신사(神社). 1978년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 14명의 위패가 합사(合祀)됐다.

잃어버린 20년과 일본의 보수화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와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우경화 흐름은 일본 국민의 지지에 기반한다. 2012년 일본 총선에서 자민당은 총 480석 중 294석(61.3%)을 차지하면서 집권 여당이 됐고, 지난해 총선에서도 총 475석 중 290석(61.1%)을 차지하며 일본 국민으로부터 강력한 지지를 받았다. 일본 우경화 흐름을 단지 일부 우익 인사의 망언으로 치부하지 말아야 할 이유다.

 일본 전문가들은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이어졌던 일본의 장기 불황인 ‘잃어버린 20년’에 주목한다. 90년대 초반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불어닥친 장기 불황으로 일본 경제는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소비는 죽고 기업 투자는 정체되면서 국민소득은 제자리걸음을 기록하고 경제 규모는 축소됐다. 전후 경기 호황에 바탕을 둔 일본 체제에 대한 근본적 위기의식이 팽배해졌다.

 이런 가운데 2011년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은 자민당의 집권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2009년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에 성공했던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은 동일본대지진으로 촉발된 국가적 위기 사태에서 총체적인 정권 운영의 무능함을 보이며 일본 국민의 실망을 자아냈다. 20년간 지속했던 경기침체와 대재난,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중도 보수 세력의 실패는 일본 국민으로 하여금 강력한 지도자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났다.

 자민당은 ‘전후 체제의 탈피’를 주장하며 ‘강한 일본’으로 답했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2012년 총선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추구하고, 국방비를 확충하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우익 공약과 행보를 보이며 정권 탈환에 성공한다. 장기 불황에 따른 일본 국민의 보수화와 자민당의 우익 정책이 만나 ‘강한 일본’에 대한 열망으로 이어진 거다. 그리고 아베 총리의 통화 공급 확대에 중점을 둔 경기 부양책인 ‘아베노믹스’가 실질적인 효과를 본다.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던 일본 경제는 살아났고, 소비와 기업 투자가 다시 활성화됐다.

 세계의 패권국가로 급성장한 중국의 존재는 일본 우경화의 국제 정치학적 배경으로 작용한다. “2010년을 기준으로 세계 제2경제대국은 일본에서 중국으로 바뀌었다. 일본으로선 1968년 이래 42년간 지켜온 미국 다음의 지위를 잃었다 … 일본은 역내 주도권을 놓고 중국과 대결의식을 떨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연히 중국 견제에 힘을 기울인다. 여기서 중국의 부상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보는 미국과 이해가 일치한다. 그 결과가 미·일 동맹 강화로 나타나고 있다.”(중앙일보 2015년 11월 4일 ‘한국이 중국에 경사됐는가’) ‘전후 체제의 탈피’를 강력하게 열망하는 일본 극우 세력의 정치적 지향점과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감정적 대응보다는 실익 추구하는 외교 필요

동북아 정세는 급변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은 단순한 힘의 대결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새로운 국제질서의 룰을 둘러싼 대결이기도 하다…지금 동아시아 역학 구도가 미국 중심의 패권적 질서에서 미·중 세력 균형에 토대를 둔 다극형 질서로 이행 중이기 때문이다.”(중앙일보 2015년 11월 14일 ‘태평양의 길 VS 아시아의 길’)

 언론은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 대국화 흐름이 동아시아 패권을 둘러싼 중·일 갈등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점을 분석한다. “일본과 중국이 당면한 내부 과제는 향후 적잖은 진통을 예고한다. 중국은 투자와 수출 주도 경제에서 내수경제로 체질 전환을 이뤄내야 한다…그 과정에서 경제 주체들의 고통은 커질 수밖에 없다…일본은 아베노믹스의 성공에 들떠 있지만 서민들의 삶은 피곤해지고 있다…양국 모두 이를 돌파하기 위해선 내부통제를 강화해야 하고, 여론 분열을 막아줄 외부의 적도 필요한 법이다.”(중앙일보 이코노미스트 2013년 12월 16일 ‘적과 동지로 물고 물리는 삼각관계’)

 언론은 일본의 우경화 행보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점을 강조한다. 침략전쟁 부인과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역사 왜곡에 대해선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며 한·미·일 동맹 강화 등 챙길 것은 챙기는 실리 노선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범국가 일본이 위안부 문제의 해결책을 먼저 내놔야 한다는 건 국제적 상식이다. 하지만 이를 대화의 대전제로 삼은 채 하염없이 일본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독도·위안부·교과서 문제는 어느 날 갑자기 말끔히 해결될 일이 아니다. 반일감정이나 대일 강경론에 함몰돼 실리를 버리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과거사와 미래를 분리하는 접근방식을 찾아야 한다.”(중앙선데이 2015년 1월 4일 ‘[사설] 외교안보의 바탕은 ‘국익 리얼리즘’이다’) 

    미국과 일본이 주축이 돼 협상 중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한일 FTA 등 한일 관계 개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경제·외교·정치적 실익도 중요하다. “작금의 동아시아 정세 아래에서 한일 관계는 양국 간 문제로만 봐선 곤란하다. 북핵 문제에다 미·중, 중·일 간 갈등이 복잡하게 뒤엉킨 동아시아 지역에서 평화와 번영이 지속하려면 미국이 든든한 버팀목으로 남아야 한다. 미국이 제 몫을 하려면 한·미·일 간 협력은 필요조건이다. 지난 1일 한·중·일 3국 정상회담에서 거론됐듯 동북아 경제공동체가 건설될 경우 우리가 얻을 혜택은 엄청날 것이다. 이 역시 한일, 중·일 간 신뢰 회복이 전제조건이다.”(중앙일보 2015년 11월 3일 ‘한일 정상회담으로 지핀 대화 불씨 살려가길’)

글=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자문=권영부 서울 동북고 수석 교사(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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