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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간박사 김정룡 서울대병원 연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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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간(肝)박사' 로 유명한 김정룡 (68.사진)박사의 요즘 직함은 서울대병원 간연구소 특별연구원이다.

3년 전 서울대 의대 교수직을 정년 퇴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환자 5천여명을 돌보는 의사 경력 44년째의 '현역'이다.

"강의하지 않는 것을 빼고는 예전과 다를 바 없어요. 의사가 환자곁을 떠날 수 있나요."

월.수.금요일은 서울대 간연구소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화.목요일 오전에는 고문으로 있는 일산백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난다고 했다.

"나이가 드니까 젊은 시절 환자들에게 좀더 따뜻하게 해줄 걸 하는 후회가 들어요. 환자는 사회적 약자니까요. 더 따뜻하고 친절하게 해줄 수도 있었는데…. 저는 성격이 좀 급해요. 요즘 환자들 사이에 '김정룡이가 사근사근해졌다'는 말까지 나돈다고 해요."

실제로 그는 환자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때 호통을 많이 친 것으로 유명하다. '간에 좋은 1백가지 약보다 나쁜 약 한 가지를 먹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그는 요즘 후배들을 만나면 "환자들에게 더욱 친절하게 대하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고 한다.

'술 박사'인 그에게 술 이야기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답은 "요즘도 여전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주량은 한창 때의 5분의 1로 줄었단다. 한 자리에서 양주 세병을 간단히 비울 때도 있었는데 요즘은 반병만 마셔도 취한다고 했다.

매주 금요일 후학들과 토론을 하고 서울대병원 인근 대학로 호프집에서 여는 '금주회(金酒會)'도 빠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주일 중 3~4일은 술을 입에 대지 않는 '휴간일(休肝日)' 원칙은 지킨단다.

"간질환이 있는 사람은 술 마실 자격이 없는 셈이지요. 정상인들도 술을 많이 마시면 지방간이 반드시 생기죠. 그러나 3~4일을 쉬면 간은 회복됩니다. 간도 쉬어야 해요."

연구 활동으로 화제를 돌렸다.

"C형 간염 바이러스의 단백질 구조 분석에 몰두하고 있어요. 혈청 분리에는 성공했는데 변형이 하도 심해서…. 매일 전자현미경을 보고 있어요. 일정하게 안 나와서 고민이 많습니다."

그는 C형 간염 바이러스 혈청 분리에 매달린 지 19년 만인 1999년 11월 이에 성공해 전인미답의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혈액에서 바이러스만 골라내는 혈청 분리를 위해 그는 13만여명의 혈액을 뽑아 19단계의 정제과정을 거쳐 2천4백배로 농축해 냈다.

金박사는 83년 B형 간염 예방 백신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한국인의 평균 수명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의사로도 평가받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B형 간염 바이러스 감염자가 전 인구의 10%였지만 백신 보급으로 현재 4%로 줄었습니다. C형 간염 감염자는 3% 정도 돼요. B형 간염이 줄어들면서 C형 간염이 간을 괴롭히는 주범이 됐지요."

그는 "C형 간염 백신 개발을 끝내는 것이 일생의 마지막 소망"이라고 밝혔다.

그의 일 욕심은 후배들 사이에 지금도 유명하다. 후배인 서울대 송인성(노무현 대통령 주치의)교수는 "연구실에 후배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현미경을 보고 있는 金박사님을 보면 경외감까지 느껴진다"고 했다.

살아오면서 가장 고마운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그는 "미국 하버드 의대에서 공부하던 1960년대 말 나에게 모든 연구실을 열 수 있는 마스터 키를 준 찰스 데이비슨 교수"라고 주저없이 말했다.

金박사는 "미국에 갈 때는 다른 공부를 하고 싶었으나 데이비슨 교수가 '한국인들은 B형 간염이 많으니 연구해 보라'고 권했다"며 "오늘의 나는 그를 만난 덕분"이라고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는 골프다. 한때 70대(싱글)도 쳤으나 요즘은 보기 플레이(90타)를 한다고 했다. 큰 아들(형준.37)과 사위(김주성.39)는 의사며, 작은 아들(범준.35)은 서울대 의대 미생물학 조교수다.

'간 박사'는 "힘이 닿을 때까지 환자를 보고, 자리에 앉을 수 있을 때까지 연구하고 싶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글=김동섭,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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