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3년간 한국전쟁 유해 933구 발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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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유해를 수습하는 내내 마음이 아팠습니다. 고인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생각하면 진작 했어야 할 일이었죠."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의 총책임자로 최근 현장 작업을 마무리한 충북대 박선주(朴善周.56.고고미술사학과) 교수.

그는 아직도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었다.

다음달 27일 종전 50주년 기념일에 발표할 발굴보고서 탈고를 앞두고 '이것으로 국가적 유해발굴 사업이 끝나버리는 것은 아닐까'하는 노파심이 들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형질 인류학을 전공한 朴교수는 '뼈대학'의 권위자다.

2000년 전쟁 발발 50주년 기념사업 중 하나로 육군유해발굴단이 출범하자 발굴단을 이끌 인물로 뽑혔고 이후 그는 2000년 3월 경북 영천시 신녕면을 시작으로 3년간 한민족 역사의 비극적인 현장 30곳을 순례했다.

朴교수는 이 기간에 일주일의 절반은 강의를 하고 나머지 절반은 휴일까지 반납한 채 발굴 현장을 지키는 생활을 해야 했다.

이런 노력 끝에 그가 발굴한 유해는 모두 9백33구. 격전지로 알려진 다부동 등에선 한꺼번에 수백구의 유해가 발굴되기도 했다.

朴교수는 이들 유해의 뼈와 이의 마모도.골단면.머리뼈 이음매 등을 면밀하게 분석한 결과 15~19세소년병의 유해가 전체의 24%에 이른다는 귀중한 결론을 얻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발군단에서 추정하는 미발견 유해는 10만3천여구로 발굴 유해를 훨씬 웃돈다.

게다가 발굴된 유해 중에서도 일부분만 남아있는 유해가 5백41구. 이러다 보니 유해의 키.나이.치아 기록 등을 조사해 개인 식별 카드를 만들고 생전 사진과 대조하는 수퍼임포즈 작업.DNA분석 등을 거쳤지만 신원을 확인한 유해는 20여구뿐이었다.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유해는 화장한 뒤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미국은 남북전쟁 때 만들어진 육군 중앙신원확인소가 여러 전쟁에서 사망한 미군들의 유해발굴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朴교수는 "우리도 한국전쟁 유해 발굴을 위한 기구를 상설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며 "그래야 호국영령에 대한 도리를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청주=안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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