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의 차이 나는 차이나] 시진핑 “7000만 빈곤 5년간 퇴치, 한 명 낙오자도 안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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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나라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한두 사람도 아닌 모든 이의 가난한 살림을 보살피기란 끝도 없는 일이어서 마치 하늘의 별 따기처럼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한데 이런 불가능에 도전하는 인물이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다. 중국 공산당이 창당 100주년을 맞는 2021년 이전까지 현재 7000만 명을 헤아리는 중국의 빈곤 인구를 모두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겠다는 것이다.

“매달 100만 명씩 가난 탈출 지원”
범정부 기구 만들어 강력한 추진
노동력 상실 땐 사회보장 시스템
낙후 거주지는 산업 잠재력 높여
돈 노리는 가짜 빈곤층 부작용도

 가난은 중국의 역사와 늘 함께했다. 왕조의 교체가 모두 가난과 연결돼 있다. 백성의 삶이 곤궁의 극에 달하면 농민 봉기가 일어나 역성(易姓) 혁명의 결과를 이루곤 했다. 그래서 집정자들은 ‘군현이 제대로 다스려지면 천하가 안정된다(郡縣治天下安)’는 구호 아래 농민의 생활을 안정시키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1949년 성립한 중화인민공화국 또한 예외는 아니었지만 78년 농민의 빈곤 발생률은 97.5%에 달했다. 농촌 빈곤 인구는 7억7000만 명을 기록했다. 그해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다.

 덩샤오핑(鄧小平)은 ‘가난이 사회주의는 아니다(貧窮不是社會主義)’는 구호 아래 2단계 발전 전략을 채택했다. 첫 단계는 일부 사람 또는 일부 지역이 먼저 부자가 되라는 것이다. 흔히 덩샤오핑의 선부론(先富論)으로 일컬어진다. 두 번째 단계는 먼저 부자가 된 사람과 지역이 그렇지 못한 사람과 지역을 이끌어 함께 부유해지자는 것이다. 이른바 공동부유론(共同富裕論)이다. 중국 개혁·개방의 역사는 그래서 빈곤 퇴치의 세월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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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쩌민(江澤民) 시기엔 중국 경제의 지속 발전을 위해 사영 기업가도 공산당 품에 끌어안았고 후진타오(胡錦濤) 시대엔 고속성장의 그늘에서 낙오된 이들을 보듬는 조화사회론(和諧社會論)이 제창됐다. 그리고 2012년 중국의 1인자로 등장한 시진핑에게 중국 공산당은 창당 100주년이 되는 시점 이전에 중국의 ‘전면적인 소강(小康)사회 달성’이라는 임무를 부여했다. 14억 가까운 중국인을 모두 먹고사는 데 걱정 없고 약간의 문화생활도 즐길 수 있는 수준으로 올려놓으란 것이다.

 중국이 처음으로 대규모 빈곤 퇴치 정책을 내놓은 것은 86년이다. 이때 첫 빈곤 퇴치 기구를 설립했고 빈곤의 기준을 마련했으며 국가급 빈곤현(縣)을 확정했다. 어떤 상태가 빈곤인지와 관련해선 과거 절대빈곤 기준과 저수입 기준이란 2개의 기준이 있었으나 2008년에 이를 하나로 통일해 연 수입 1067위안 이하를 국가 빈곤 기준으로 삼았다. 경제가 나아지며 빈곤 기준도 해마다 상향 조정돼 2009년엔 1196위안, 2010년엔 1274위안이 됐고 2011년에는 현재의 2300위안(약 42만원)으로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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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급 빈곤현 숫자는 86년 273개에서 빈곤 기준이 상향 조정된 결과 88년 328개, 94년에는 592개로 늘어났다. 2001년 연해 발달지구는 모두 빈곤의 딱지를 뗐지만 중서부 지구의 빈곤현이 증가하며 국가급 빈곤현은 592개의 숫자를 그대로 유지했다. 빈곤 인구는 개혁·개방 이후 30여 년 동안 6억 명 이상이 줄어 2013년 말 8247만 명을 기록했는데 2014년 한 해에만 1200만 명이 빈곤에서 벗어나 현재는 7000만 명을 헤아린다.

 시진핑은 이 7000만 빈곤 인구를 내년에 시작해 2020년에 끝나게 되는 제13차 5개년 계획 기간 동안 모두 없애겠다는 야심이다. 매달 100만 명씩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올해로 2회째를 맞은 중국 빈곤 퇴치의 날인 지난달 17일에 즈음해 시진핑은 “빈곤 추방에서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하며 왕양(汪洋) 부총리를 조장으로 하는 국무원 빈곤 퇴치 영도소조를 확대 개편했다. 부조장 6명을 교체하고 새로운 멤버 9명을 확충해 빈곤 퇴치 소조 구성을 37개 부서로 확대했다. 중국 정부부처는 거의 모두 망라된 셈으로 시진핑의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시진핑의 빈곤 퇴치 전략은 ‘6개의 정확하게’로 설명된다. 도와야 할 가난한 이를 정확하게 확정하고 빈곤 퇴치 프로그램을 정확하게 설계하며 자금 지원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또 구빈(救貧) 조치가 정확하게 대상자에게 실시되고 빈곤촌(村)마다 필요로 하는 인재를 정확하게 파견해 구빈 효과가 정확하게 이뤄지도록 하라는 것이다.

 우선 구빈 대상을 정확하게 확정하라는 시진핑의 말은 너도나도 빈곤현으로 지정받아 정부의 지원을 받아 내려는 중국의 슬픈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중국에선 국가급 빈곤현으로 선정되는 것을 부끄러워하기보다는 열렬히 축하한다는 플래카드가 곧잘 등장한다. 중앙정부로부터 엄청난 재정 지원을 받는 것은 물론 산업과 교육 등 각종 방면의 지원이 잇따르기 때문이다. 지난달 중국 언론에 따르면 광시(廣西) 좡(壯)족 자치구의 마산(馬山)현은 3119명의 주민을 빈곤 인구라고 허위 보고해 국가급 빈곤현으로 지정받은 뒤 수천만 위안(수십억원)의 정부 보조금을 타냈다. 한데 빈곤 인구로 알려진 사람 중 2454명이 2645대의 차량을 구입했고 439명은 자신의 사업체를 가진 사람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시진핑의 빈곤 퇴치 장애물은 크게 두 가지다. 현재의 빈곤 인구가 노동력을 상실한 사람이거나 고산지대 등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에 거주하는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시진핑은 노동력 상실자는 사회보장 시스템으로 끌어안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 생활하는 빈곤 군중은 아예 거주지 자체를 산업 잠재력이 있는 곳으로 바꾸는 방법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가난을 돕기 전에 가난 극복의 의지부터 다지게 하라(扶貧先扶志)’며 정신적인 빈곤 퇴치를 주문하고 있다. 특히 교육을 강조해 빈곤의 대물림을 끊게 하겠다는 전략도 구사 중이다. 중국의 모든 인구가 한꺼번에 가난에서 해방된다는 것은 수천 년 중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시진핑이 과연 새로운 역사를 쓸 수 있을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you.sangch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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