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남은 건 당신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나 보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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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유공자 부부 12쌍을 위한 합동결혼식이 10일 서울 용산전쟁기념관에서 열렸다. 김경섭(92)씨와 부인 엄기심(82)씨가 큰 딸 김춘심(58)씨가 읽는 ‘감사편지’를 들으며 눈물짓고 있다. [조문규 기자]

“사랑하는 아내, 당신에게. 밤낮으로 같이 있는 사이에 편지라고 쓴다고 하니 쑥스럽소. 허나 돌이켜보면 61년 전 폐허 속에서 결혼하여 오늘 곱게 차려입은 당신을 보니 꽃다웠던 우리네 젊은 시절이 떠오르며 지나간 60여 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는구려.”

참전유공자 12쌍 결혼 60년 회혼식

 10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뮤지엄웨딩홀. 6·25 참전유공자인 김창도(92)씨가 부인 우숙자(80)씨에게 자신이 써온 ‘60년의 행복한 동행’이라는 제목의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6·25 전쟁 속에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낮에는 대한민국 영토가, 밤에는 북한 영토가 되는 치열한 전투 속에서 살아남은 것은 어쩌면 당신을 만나기 위한 것이 아니었는지 모르겠소.” 잠시 숨을 고른 김씨는 말을 이었다.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 그 소녀같던 모습이 나에게는 아직도 선명한데 어느새 우리 모두 황혼길에 접어들어 있구려…(중략)…언제나 행복하게 해주고싶었지만 삶이 그렇게 녹록치만은 않더구려. 항상 고생시킨 것 같아 미안하오.”

 서울지방보훈청이 마련한 이날 행사는 ‘6·25 전쟁 65주년 기념 참전유공자 합동결혼식’이었다. 김씨 부부를 비롯해 12쌍 부부를 위한 자리였다. 이날 생애 첫 결혼식을 한 이들도 있었지만 60년간 부부의 정을 나눈 이들을 위한 회혼식의 의미를 담았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1·4 후퇴 후 군에 입대했던 김창도씨는 “6·25 참화에 살아남아 회혼식을 한 것은 내 행운”이라며 “이는 국가가 존재해서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경섭(92)씨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입대해 미 극동사령부 소속 특공부대에서 근무했다. 김씨는 “ 옛날 같았으면 생각도 못할 일인데 세월이 좋아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결혼식은 서경대 미용학과 교수와 학생들이 신부 메이크업을 지원하고, KBS 청춘합창단은 축가를 부르는 등 여러 단체가 재능 기부로 참여했다. 대우증권이 피로연 등의 행사 후원을 했고, 예금보험공사는 신혼여행 비용을 지원했다.

글,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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