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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하경 칼럼

‘강남스타일’이 최몽룡 교수 잔혹사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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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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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논설주간

국정 역사 교과서 대표집필자인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 잔혹사를 지켜보면서 보들레르의 시 ‘알바트로스’가 떠올랐다. 가장 멀리, 오래 나는 창공의 왕자 알바트로스는 선상(船上)의 포로가 되는 순간 조롱거리로 전락한다. 본인의 실수도 있었지만 원로학자를 희화화(戱畵化)해서 몰아낸 건 집단적 광기의 충돌이었다.

 한 사회의 성숙도는 내 생각과 다른 주장을 받아들이는 관용의 정도에 달렸다. 관용지수가 낮으면 폭력이 고개를 든다. 한국 정치인들은 국정화 이슈가 등장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선악을 가리는 절대 기준으로 만들어버렸다. 국정화를 반대하는 세력은 검인정 7종 교과서가 대한민국의 성취를 평가절하하는 편향성의 오류를 저질렀다는 사실에 눈을 감는다. 찬성하는 쪽은 현행 검인정제 아래서 정부가 내린 두 차례의 수정명령이 100% 이행됐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격렬한 찬반의 구호만 오갈 뿐 합의를 위한 숙고와 토론은 없다. 최몽룡 잔혹사는 사회적 폭력의 예고된 결말이었다.

 고대 그리스 예술가는 신전을 건축할 때 직선 부위를 곡선으로 처리했다. 인간의 망막이 구면(球面)이어서 상이 왜곡되게 맺힌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깨닫고 ‘보여지는 직선’을 획득하려는 노력을 한 것이다. 시각의 태생적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극복하려는 자세에 숙연해진다. 가능하지 않은 무오류(無誤謬)를 전제로 나만 옳다면서 상대를 제압하려는 교과서 전쟁의 주역들과는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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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화 반대론자들은 왜곡된 현행 교과서의 균형을 잡기 위해 먼저 반성하고 대책을 강구했어야 했다. 찬성론자들도 국정화 카드를 꺼내기에 앞서 다른 모든 방법을 검토했어야 했다. 검인정 체제에서도 문제가 있으면 수정, 발행 정지, 검정 취소가 가능하다는 점도 짚어봤어야 했다. 이제부터라도 두 세력이 자기 논리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상대를 위한 여지를 남겨둘 수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일류의 집필진이 당당하게 참여해 충분한 시간을 갖고 투명한 국민 검증을 거쳐 최고의 교과서를 만들자는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최몽룡 사태도, 역사 해석의 권한을 국가가 독점한다는 비판도 피할 수 있다.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은 세상이 서로 다른 요소가 뒤섞여 공존하고 있다는 혼종성(hybridity)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령 21세기 한국을 제대로 알린 한류, 그중에서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상징되는 K팝을 생각해 보자. K팝은 한국의 음악인가. 정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이다. 문화적 국가주의(cultural nationalism)의 경계를 뛰어넘었기 때문인데, 이게 글로벌 경쟁력의 원천인 문화적 혼종성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말레이인, 화교, 인도인의 소통을 위해 이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한류 아이돌 광고를 자주 한다고 한다. 한류가 갖는 다중정체성의 소프트파워가 한국의 체력을 키워준다. 한류가 통하는 나라에서는 한결같이 한국 상품이 비싸게 팔린다. 팔레스타인 출신 미국 문학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어떤 것도 단일하거나 순수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혼종적이고 이질적”이라는 논리가 낯설지 않은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도 싸이에게 “‘강남스타일’이 한국 노래인가, 외국 노래인가”라고 묻는다면 실례고, 대답을 강요하면 폭력이 된다. 그렇다면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자”는 주장이 맞기도 하고 “국정보다는 검인정이 낫다”는 얘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절망적 아포리아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우리 스스로에게 달렸다.

 자주·평화·민주를 3대 원칙으로 한 한민족공동체통일안은 노태우 정부가 1989년에 만들었다. 당시 노 대통령은 이홍구 통일원 장관에게 “야당의 세 총재(김영삼·김대중·김종필) 얘기를 듣고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이 장관은 전화 한 통화면 아무 때고 만날 정도로 세 사람과 긴밀하게 소통한 끝에 한국 최초의 통일방안을 만들었다.

 합의안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살아온 과정이 달랐던 노 대통령과 3김의 생각이 충분히 반영됐고, 저마다 자신의 저작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영삼·김대중 정부에서도 그대로 승계됐고 지금도 유효한 통일방안으로 남아 있다. 내 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서로의 가치와 철학이 뒤섞이는 혼종성은 이렇게 생산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노태우식으로 접근해 “올바른 교과서를 만들자”는 과제는 던지되 “여야 지도자와 국민이 합의한 방식을 따르겠다”고 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노태우’나 ‘강남스타일’의 혼종성을 수용하면 적어도 최몽룡 잔혹사의 반복은 막을 수 있다.

이하경 논설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