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뒷말 무성한 도지사 관사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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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도민 여론을 들어 도지사 관사 폐지 여부를 결정하겠다. 대신 도지사 부인의 관용차 이용 문제는 더이상 거론하지 말자."

경북도의 간부들이 얼마 전 구미경실련을 방문해 제안한 내용이다. 도청의 국장과 과장이 구미까지 찾아간 것이다.

경북도가 이같은 이상한 제안을 한 과정은 이렇다. 경실련 경북협의회는 지난 4월 지방자치단체장의 관사 폐지운동을 시작했다. 관사는 임명제 시절의 잔재라며 없애자는 것이었다. 자치단체장이 주민과 함께 살아야 지역에 대한 애착이 생긴다는 의미도 포함돼 있다. 이의근(李義根)도지사의 자택이 서울에 있는 탓에 경실련의 요구도 거셌다.

운동이 본격화하면서 경실련이 두차례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경북도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시 공개질의서를 내고 도청 정문에서 시위를 하겠다며 강경한 자세를 보이자 뒤늦게 "의회의 의견을 묻겠다"고 했다. 이후 "의원들이 폐지에 반대한다"며 '불가'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하지만 다른 변수가 나타났다. 도의 결정에 반발한 경실련이 도지사 부인 李모(58)씨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내기로 한 것이다. 도가 지난해 8월 의전용으로 구입한 그랜저 승용차를 李씨가 사적인 용도로 사용해 도민에 '고통'을 주었다는 것이다.

경실련이 소송이란 카드로 압박하자 협상용 제안을 했다는 얘기다. 도청의 한 간부는 "도지사 부인이 여성단체 모임 등에 참석하느라 차량을 이용했다"며 "넓게 보면 사적 이용이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했다. 관사문제와 관련해 경북도의 이같은 결정은 '꼼수'행정이란 비판을 면키 어렵게 됐다.

홍권삼 전국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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