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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높은 개방 수준의 TPP … 새 통상·산업 전략 시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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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 달 전 타결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협정문이 어제 뉴질랜드에서 처음 공개됐다. 이제 12개 회원국 중 6개 이상의 국가에서 의회 비준이 이뤄지면 TPP가 공식 출범한다. 전 세계 국내 총생산의 40%를 차지하는 거대 경제권이 현실로 등장하는 것이다. 협상을 주도하는 미국 정부가 서두르고 있어 내년 상반기 중 TPP 출범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협정문에 따르면 회원국들은 최장 30년에 걸쳐 모든 공산품 시장을 사실상 100% 개방한다. 농산물 등 일부 예외 품목을 반영해도 시장개방률이 95~100%에 이르게 된다. 특히 TPP 권역 내에서 수입하는 원료와 중간재까지 모두 최종 생산국을 원산지로 인정해주는 ‘누적 원산지’ 개념이 채택됐다.

우리보다 앞서 동남아를 중심으로 한 분업 생산 체계를 갖춘 일본이 쾌재를 부르게 됐다. 한국이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구축해 온 통상 조건에서의 대일(對日) 우위도 TPP 참여 국가들 사이에선 의미를 상실했다. TPP로 인해 시장 개방의 기준과 질적 수준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역 규범이 강화된 것도 한국엔 불리하다. TPP 참여국들은 정부가 직간접으로 소유한 기업이 보조금을 받아 수출할 경우 경쟁국이 제소해 제재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가스공사와 같은 30개 공기업은 물론 대우조선해양처럼 국책은행 산하에 있는 기업들까지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부실 기업까지 연명시켜 가며 수출 지원 정책을 펴 온 한국의 산업 정책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지적재산권 보호 등 서비스 관련 일부 조항도 한·미 FTA보다 강화됐다.

 이제 한국이 TPP에 참여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게 현실이 되고 있다. 정부도 지난달 가입 의사를 공식화했다. 다만 가입 조건과 시기는 신중하게 따져야 한다. 후발 주자로 참여하는 데 따르는 비용을 최소화하고 가입 효과를 극대화할 전략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다. 정부와 재계가 함께 산업 구조를 재편하고 노동·금융을 개혁해 경제 체질을 강화하는 일도 시급해졌다. TPP를 기회로 바꿀 통상·산업 전략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