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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내기 어려운 회담, 예상보다는 잘했다” 평균 7.5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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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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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6개월 동안 별렀던 만남이었다. 그사이 서로 ‘날 선 말’을 무수히 주고받았지만 이웃이기에 어렵게 만났다. 2일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한·일 정상회담을 지켜본 전문가들은 이 만남에 “예상보다 잘했다”며 대체로 합격점을 줬다.

외교·안보 전문가 20인 회담 평가
언쟁하다 최악 상황 올 수 있었지만
박 대통령, 위안부 여유롭게 대처
TPP 가입 일본 반응도 만족 수준
한·일, 대화 물꼬 텄지만 험로 많아
2차 회담 내년 2월 초 가장 적절

 본지가 2일 외교·안보 전문가 20명에게 “한·일 정상회담 전반을 평가해달라”는 긴급설문을 한 결과 평균 7.5점(0~10점 척도, 점수가 높을수록 ‘성공적’)이 나왔다. 5점을 중간 점수인 ‘보통’으로 놨는데, 1명만 5점 미만을 택하고 19명은 모두 6점 이상을 줬다.

 외교부 당국자들은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보다 성사되고 나서 더 긴장했다. “위안부 피해 문제에 대한 일본의 태도 변화 없이는 안 만나준다더니, 겨우 이러려고 지금까지 버틴 것이냐”는 국내 비판이 나올까 걱정했다. 하지만 연세대 손열 국제학대학원장은 “그동안의 한·일 관계를 봤을 때 손님맞이 이상의 성과를 내기는 어려운, 잘하기 굉장히 어려운 정상회담이었다”며 “정상회담을 통해 대일 투 트랙 전략을 본격화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일본과 역사 문제로는 얼굴을 붉히며 싸워야 하고, 다른 한편으론 협력을 위해 차갑게 주판알을 튕겨야 한다. 일단 교착상태는 풀었지만, 험난한 과정은 계속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고려대 김성한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린 회담에서 박 대통령이 역사 문제에 올인하는 듯 초조하게 나오지 않고 여유를 보인 것은 잘한 것”이라며 “역사 문제를 넘어 안보 문제 등에서 협력을 강화해 무게중심을 자연스럽게 이동시켰다”고 말했다. 성공회대 양기호(일본학과) 교수는 “두 정상이 언쟁하다 최악의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며 “하지만 한국은 실용외교로 전환했고, 이번 회담은 물꼬를 튼 것에 의의를 둘 수 있다”고 했다.

 경제분야 협력에 대해서도 좋은 평가가 나왔다. 한국외대 남궁영 정치언론대학원장은 “한국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에 대한 일본 측 반응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다만 핵심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평점(6.4점)이 전체 평균 점수보다 낮았다. 5점 이하를 준 전문가가 5명 있었다. 위안부 문제를 풀기 위한 양국 간 협의를 가속화한다는 데 합의한 것은 의미가 있지만, 가시적 진전을 보지 못한 것은 아쉽다는 의견이었다. 이화여대 박인휘(국제관계학) 교수는 “회담에서 양측은 자신의 입장을 완곡하게, 외교적으로 반복했다. 일본은 우리 국민과 정부의 위안부 문제에 대한 우려는 이해하면서도 선뜻 원하는 걸 해줄 순 없다는 입장이란 걸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였다”고 말했다. 한반도미래포럼 천영우 이사장(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조기 타결을 위해 협의를 가속화한다’는 말은 언제 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사실상 특별한 합의가 없을 때 쓰는 표현”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세종재단 박준우(전 청와대 정무수석) 이사장은 “지난 7월 일제 강제징용 시설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로 양국 외교당국 간에 오해가 생겼고, 불신이 심해져 위안부 협상 타결도 지연되고 있었다”며 “이번 회담에서 사실상 이 이상의 타협을 보기는 처음부터 어려웠다”고 봤다.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도 "위안부 문제는 양국간 타결이 힘든 이슈인데 정상들이 문제 해결의 동력을 끌고 나갔다”고 말했다.

 향후 양국 관계에 대해 서울대 박철희(일본연구소장) 국제대학원 교수는 “위안부 문제도 무조건 일본을 비난하고 몰아붙이기보다 정확히 소통하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알려줘야 한다”며 “대화의 물꼬를 텄으니 다시 만날 때의 부담도 상당히 줄었다”고 진단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장은 “양국의 관계 개선 의지가 이제부터 본격적 시험대에 올랐다. 2차 정상회담 시기는 일본 다케시마의 날(2월 말)과 방위백서 발표(3월), 야스쿠니 신사 봄 제사(4월), 일본 참의원 선거(7월) 등의 일정을 감안하면 2월 초가 가장 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추가 정상회담을 통해 과거사 문제 해결을 최소 중간 단계까지는 끌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지혜·현일훈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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