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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당신] 서유헌 가천대 뇌과학연구원장 "초정밀 MRI로 뇌질환 규명, 임상연구 … 치매 정복 머잖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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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100세 시대’라고 한다. 그만큼 사람의 수명이 길어졌다는 뜻이다. 한국인의 평균수명도 80세를 넘어 90세를 바라본다. 의·과학 발전 덕분이다. 하지만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은 무의미하다. 삶의 질이 관건이다. 21세기 의학에서 뇌과학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다. 치매·파킨슨병에서부터 우울증·조현병·중독까지 삶의 질을 좌우하는 질환 대부분이 뇌와 관련이 깊어서다. 이런 가운데 올 10월 국내 뇌과학 연구의 권위자인 서유헌 전 서울대 의대 교수가 가천대학교 뇌과학연구원장으로 부임했다. 서 원장은 치매의 대가로도 유명하다. 서 원장을 만나 뇌질환 정복 가능성에 대해 들었다.

사람의 뇌는 소우주로 불린다. 복잡하고 방대해서다. 인간에게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만큼 뇌질환 치료의 발전은 더뎠다. 하지만 서 원장은 “뇌질환을 정복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 치매의 고통에서 해방되는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7테슬라 MRI로 뇌를 들여다보다

뇌과학 발전의 핵심에는 초정밀 자기공명영상촬영(MRI)이 있다. 바로 7테슬라(T) MRI다. MRI는 인체에 자기장을 발생시켜 인체 각 단면을 영상화하는 의료장비다. 테슬라는 MRI에서 발생하는 자기장을 표시하는 단위를 말한다. 높을수록 더욱 자세한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진단에 사용되는 MRI가 1.5T급, 높아야 3T급에 불과하다.

가천대 뇌과학연구원은 10여 년 전 국내 최초,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7T MRI를 구축했다. 7T MRI는 신경망의 구조와 호르몬 분비, 혈관 등 세세한 변화를 감지해 영상으로 구현한다. 눈으로 뇌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7T MRI는 ‘뇌를 들여다보는 천리안’으로 불린다.

서 원장은 “뇌질환을 극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명확한 원인 규명”이라며, “가령 치매가 발병하는 원인과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면 이에 기반한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현존하는 치매 치료제의 경우 치매 초기 인지기능을 개선하는 데 그친다. 중증 치매를 치료하는 방법은 마땅히 없는 상태다. 치매의 진행을 늦추는 것이 현재로서는 치료의 최선이다. 그는 “7T MRI는 상세한 뇌 영상을 제공해 뇌질환 메커니즘을 규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며 “파킨슨병·우울증·자폐증 등 치료제 개발의 발판이 갖춰졌다”고 말했다.

원인 규명, 치료제 개발, 조기 진단, 예방까지

7T MRI의 활용 가능성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약효의 검증과 조기 진단·예방도 가능케 한다. 질환 발생 전후, 치료제 투약 전후의 미세한 변화를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다. 뇌영상 기술로 뇌질환 정복 임상연구를 가속화한 셈이다.

서 원장은 “피킨슨병은 뇌에 흑질이라는 부위에 도파민 신경세포가 망가지는 질환”이라며 “이제는 도파민 신경세포가 언제부터 망가지는지, 망가지면 어떤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조기 진단의 물꼬가 트였다는 의미다.

치료제 효과 검증에도 유용하다. 새로 개발한 약제가 투여된 뒤 변화를 비교해 개선 여부를 즉각 확인할 수 있어서다. 기존에는 동물 임상시험 시 약효를 확인하려면 뇌를 꺼내 조직검사를 하거나 잘게 절편을 만들어 염색해 화학적으로 분석해야 했다. 기존 방식은 약효를 확인하는 데 번거로움도 있었지만 지속적인 경과 관찰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었다. 서 원장은 “그동안 약효를 검증하더라도 동물검사를 하면 한 번밖에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영상을 이용하면 약물 효과의 경과를 지켜볼 수 있다”며 “뇌질환 연구 속도를 높이는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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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대 뇌과학연구원 지하 2층에 설치된 7T MRI. 강력한 자장 때문에 두께 70㎝가 넘는 벽에 둘러쌓여 있다.]

뇌질환 중개 연구 가속화

서 원장이 하고 있는 연구는 뇌질환 중개 연구다. 기초 연구가 원인규명에 머물지 않고 연구결과를 임상에 실제 활용할 수 있는 단계까지 끌어올리는 연구다. 그는 이를 위해 뇌질환별 영상 마커(marker)와 신약 후보물질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영상 마커는 7T MRI 영상에서 뇌질환을 조기에 진단할 수 있는 표지자를 말한다. 뇌과학연구원은 앞서 알츠하이머(치매) 환자의 뇌에서 해마의 경계 부분부터 조금씩 허물어지고, 파킨슨병 환자의 뇌 흑질 부분의 바깥쪽부터 줄어드는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치료제 개발에 어느 정도 성과도 거뒀다. 그는 “치매·파킨슨병·우울증·자폐증 치료제 개발 연구를 진행 중”이라며 “이미 1상 임상을 끝내고, 2상 임상에 돌입하는 약도 있다”고 말했다.

줄기세포 연구도 진행 중이다. 뇌신경세포는 재생이 안 돼 이를 복구하는 줄기세포 치료가 효과적이다. 그는 체지방에서 추출한 성체 줄기세포를 쥐꼬리 정맥혈관에 주입해 치매와 파킨슨병의 치료와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학회에 보고됐다. 서 원장은 “지방줄기세포 치료가 치매·파킨슨병·자폐증 등에 효과가 좋고 거부반응이나 종양 발현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줄기세포 치료도 7T MRI와 접목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가천대 뇌과학연구원은 7T급을 넘어선 11.74T급의 MRI를 송도에 구축해 더욱 정밀한 뇌 질환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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