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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송도의 기적 20분 설명 듣더니 “같이 회사 만듭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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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호 21면

권오준 포스코 회장과 압둘라만 PIF 총재가 지난 3월 사우디에서 건설·자동차 산업 등의 포괄적 협력관계 구축을 위한 양해각서(MOU)에 서명하고 있다.

1 지난 6월 포스코건설 주식 양수도 계약식이 끝난후 포스코건설이 시공중인 인천아트센터 건설 현장을 방문한 압둘라 PIF 총재(앞줄 왼쪽 두번째).

지난해 2월 사우디 국민차 사업을 위해 한국의 대우인터내셔널을 방문한 압둘라만 알 모파디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 총재는 출국을 위해 인천공항으로 가기 전 잠시 송도국제도시에 들렀다. 바다를 메워 지어진 도시에 저마다 독특한 외관을 뽐내는 고층 건물, 건물숲 가운데 위치한 공원과 햇살에 빛나는 수로, 그리고 이 모든 경관과 어우러진 주거지역. 송도를 둘러 본 그는 이 도시의 매력에 푹 빠졌다.


“우리 사우디도 꾸준히 신도시를 개발하고 있습니다. 송도국제도시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인데, 혹시 송도 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대우인터내셔널 관계자는 모기업인 포스코를 통해 송도 신도시 건설에 참여한 포스코건설에 이 소식을 전했다. 그의 빠듯한 일정 속에서 포스코건설은 어렵게 회사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주어진 시간은 단 20분이었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4개월 후, PIF는 포스코에 포스코건설 지분 인수와 사우디 건설 합작법인 설립을 제안했다. 포스코의 사우디 상륙작전은 이렇게 시작됐다.

2 PIF 관계자들이 송도국제도시 커낼워크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 포스코건설]

포스코, 사우디 주요사업 핵심 파트너로포스코건설과 사우디 국부펀드 PIF의 합작 건설사가 출범 초읽기에 들어갔다. 사명은 포스코 E&C 사우디아라비아. 자본금은 3500만 달러다. PIF와 포스코건설이 6대 4의 비율로 투자했다. 포스코 E&C 사우디아라비아는 앞으로 사우디 정부가 발주하는 철도·호텔 등 현지 주요 건설사업에 참가할 계획이다.


이번 합작은 ‘포스트 오일’ 시대에 대비한 사우디 정부의 산업 다각화 차원의 프로젝트다. 건설·자동차 등 사우디의 주요 사업에 포스코가 핵심 파트너로 참여한다. 김종국 해외건설협회 실장은 “사우디의 건설 시장은 정부의 경제개발 정책 추진과 맞물려 연평균 5%에 가까운 성장을 보이고 있다”며 “올해부터 5년 간 계속될 제10차 사우디경제개발계획에 따라 산업 다각화와 일자리 창출 노력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포스코와 합작한 PIF는 사우디의 제조업과 산업 인프라 투자를 주도하는 국부펀드로 자산 규모가 3000억달러(330조원)에 달한다. 2008년 설립 당시 사우디 재무부 산하였다가 올해 사우디 경제개발을 총괄하는 국왕 직속의 경제개발위원회(CED) 산하로 옮겼다.


포스코는 PIF에 포스코건설의 지분을 일부 매각한 상태다. 지난 9월 PIF는 포스코건설의 지분 38%를 1조2400억원에 사들였다. 포스코가 보유한 180만주(26%)와 포스코건설이 발행한 신주 508만주(12%) 등 총 1588만주다. 이에 따라 PIF는 포스코건설의 2대 주주가 됐다. PIF측이 추천한 2명의 이사는 포스코건설의 경영 활동에 참여할 예정이다. PIF의 지분 참여 이후 국제 신용평가사 S&P는 포스코건설의 신용등급 전망을 ‘BBB+, 부정적(Negative)’에서 ‘BBB+, 안정적(Stable)’으로 상향 조정했다.


포스코와 PIF의 협력은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 모범사례로 꼽힌다. 현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사회간접자본(SOC) 개발을 수주하고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사업 모델이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건설사들은 유가 하락으로 중동지역의 건설 프로젝트가 연기되며 이미 발주한 사업이 취소되는 등 해외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엔화와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며 일본과 유럽 등 외국업체와의 수주 경쟁도 더욱 치열해진 상태다. 이번 협력은 검찰 수사까지 받으면서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한 포스코그룹에도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 고위 관계자는 “PIF가 포스코건설의 2대 주주가 된 것은 포스코그룹과 PIF가 결혼을 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포스코의 다른 계열사들도 PIF를 통해 사우디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다”고 말했다.


사우디, 한국의 경제 발전 경험에 관심포스코 E&C 사우디아라비아는 초기에는 ‘저위험 고수익 사업’에 집중하며 성공 경험을 쌓아 사우디 5대 건설사로 성장하겠다는 전략이다. PIF와 포스코건설은 협력 분야를 건축·토목·플랜트사업으로 확대하고 이후 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 등 인근 국가에도 진출한다는 목표다. 이를 통해 포스코는 중동 지역에서 안정적인 수익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코트라 관계자는 “사우디에선 사업자 선정에 인맥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고 대형 바이어들은 이미 유럽·북미·일본의 업체와 에이전트 계약을 맺고 있다”며 “포스코와 PIF의 협력은 중동지역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는 새로운 유형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우디 정부는 포스코의 건설기술 이전 외에도 산업 전반에서 한국의 고속성장 모델을 이식하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 정부는 한국이 1970년대 경제 발전을 이루던 모습을 재연하고 싶어한다. 건설뿐 아니라 제조업 전반에서 한국의 노하우를 배우고 싶어한다. 이런 기대와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국내 건설사에서 전례 없는 대규모 해외 자본 유치가 이뤄졌다.”(조용두 포스코건설 경영기획본부장)


김경미 기자 ge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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