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어두기 투자'로 갈아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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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이달 초 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 쌍용스윗닷홈 32평형에 당첨된 회사원 金모(43)씨는 투자 회수 기간을 길게 잡았다. 이 아파트의 계약일이 분양권 전매금지 조치 시행일(7일) 이후여서 전매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金씨는 "중도금 무이자 혜택을 감안하면 주변 시세보다 평당 30만원 정도 싸 입주(2006년 3월)까지 보유해도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5.23대책 이후 부동산 투자 패러다임이 단기에서 중.장기로 바뀌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 등 투기과열지구에선 분양권 전매가 금지되고 양도소득세를 실거래로 과세하는 투기지역이 확대돼 단기 시세차익을 올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파트 분양시장은 가수요가 사라진 가운데 입주를 염두에 두고 청약하는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투기를 부추기는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도 자취를 감췄다. 또 대표적인 부동산 장기 투자상품인 토지에 투자자들이 몰려드는 것도 이같은 현상을 반영한다.

25일 청약하는 경기도 하남시 덕풍동 LG자이아파트 모델하우스 주변에서는 떴다방을 찾기 어렵다.

LG건설 임대환 소장은 "분양권 전매 금지조치로 현금화가 어렵기 때문에 2~3년 뒤를 내다보고 투자하려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라고 말했다. 전매금지 조치 이전만 해도 웃돈 문의가 많았으나 요즘은 중도금 융자나 발전 가능성 등을 묻는 상담 위주로 바뀌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신동아건설 하헌의 분양홍보팀장은 "전매 금지 조치 이전만 해도 계약 후 한 달 이내에 주인이 바뀐 경우가 전체 계약자의 30~50%나 됐지만 이제는 단기전매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했다. 주택업계에선 계약자의 자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중도금 무이자나 이자후불제가 일반화할 것이라고 河팀장은 내다봤다.

그동안 가수요가 몰려 과열을 빚었던 서울 강남권 저밀도.저층 단지도 요즘은 중.장기 투자자들이 많다. 잠실동 중앙부동산 김경섭 사장은 "저밀도지구 내 아파트를 매입하는 사람들은 재건축 후 들어와서 살겠다는 수요자가 대부분"이라며 "실거래가로 양도세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강남구 개포동의 한 중개업자는 "세무당국이 강력한 투기단속을 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선 단기차익을 내기 어렵지 않느냐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5.23대책 이후 토지시장에는 큰 손은 물론 일반투자자들의 중.장기 투자자금이 몰리고 있다. 한국개발컨설팅 강경래 사장은 "최근 토지에 유입되는 자금은 대부분 3~5년을 내다보는 묻어두기식 투자금"이라고 말했다.

아파트에 비해선 덜하지만 값이 만만치 않게 오른 데다 수도권과 충청권은 대부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단기차익을 노리기가 어렵다. 지난달 말 토지투기지역으로 지정된 충남 천안의 공인중개사 權모(43)씨는 "지난해만 해도 단기투자가 많았으나 실거래가로 양도세가 부과되면서 엄두도 못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7월 이후에도 3백가구 미만 주상복합아파트나 오피스텔의 경우 전매가 가능한 이점 때문에 단기 투자자가 일부 몰릴 것으로 내다본다.

하지만 단지규모가 작고 투자자들의 선호도가 낮아 그 이전만큼 과열양상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LG경제연구원 김성식 연구위원은 "5.23대책을 계기로 부동산 투자 패턴에도 큰 변화가 일고 있다"며 "시장의 안정 차원에서 볼 때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박원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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