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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의 짐 내려놓고 나를 찾으러 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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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비정상회담’에서 활약한 마크(맨 뒤)와 일리야가 지난 18일 진관사에서 선우 스님의 지도로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있다.

자연 속에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고 휴식도 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Templestay)’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JTBC 인기 프로그램 ‘비정상회담’에서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던 ‘미국 대표’ 마크 테토(35)와 ‘러시아 대표’ 일리야 벨랴코프(33)도 지난 18일 서울 은평구 진관사를 찾았다. 반나절 아름다운 가을 정취를 느끼면서 산사에 머무른 이들과 동행했다.

마음의 안식처 템플스테이

JTBC ‘비정상회담’ 출연
외국인 마크·일리야
진관사 템플스테이 체험

“‘당신의 삶은 어떻냐’는 스님 질문에 눈을 감고 생각하게 됐고, ‘내 인생의 감독은 돈과 주변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말에 감동을 받아 미소를 지었다.” 마크의 말이다.

마크와 일리야의 체험은 입고 온 청바지와 셔츠를 벗고 넉넉한 크기의 회색 바지와 갈색 조끼를 입는 것으로 시작됐다. 밥알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모두 먹는 발우공양(평소 스님이 정해진 규칙에 따라 하는 식사) 시간. ‘탁탁’ 스님의 죽비소리에 맞춰 발우(그릇)를 꺼내고 반찬을 떠서 천천히 밥을 먹었다. 한 마디도 하지 못하는 엄숙한 분위기에 두 남성은 “내 생에 가장 어려운 식사 자리였다”고 토로했다.

진관사 주지 계호 스님과 마주보며 차를 마시는 시간이 이어졌다. 깊게 우러난 차의 색을 확인하고 윗입술이 차에 닿을 듯 말 듯 컵을 가까이 대고 향을 맡으며 차를 음미했다. 따뜻한 차 한잔과 최근 근황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그후 가부좌(다리를 접어 옆 다리 허벅지 위까지 올려 앉는 자세)를 틀고 명상한 후 사찰을 거닐며 스님에게서 고려시대에 지어진 사찰의 역사에 대해 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수십 번 절하는 것을 끝으로 반나절 템플스테이 체험이 끝났다. 다시 옷을 갈아입고 만난 마크와 일리야에게 체험 점수를 매기면 몇 점인지 물었다. 우려와 달리 둘은 입을 모아 “5점 만점에 4점요, 별 네 개요”라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마크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감사함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밥 먹기 전에 인사하고 밥을 다 먹은 후 그릇을 다시 서랍장에 넣으면서도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일리야는 “‘빨리빨리’ 해야 하는 일상생활과 달리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공간 같았다”며 “스님의 발걸음에 맞춰 느릿느릿 걷고 천천히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서 모처럼 주변을 돌아보고 또 나 자신까지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자연 속에서 명상에 잠겨

템플스테이는 사찰(Temple)에서 일정 기간 머무르는(Stay) 것을 의미한다. 사찰에서 반나절, 하루 혹은 이틀, 길면 일주일을 머무르면서 산사의 생활을 체험한다. 2002년 경북 김천에 있는 직지사에서 처음 시작된 템플스테이는 전국적으로 인기가 퍼져 현재 사찰 120여 곳에서 운영되고 있다.

프로그램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사찰에서 1박 2일을 머무르며 불교문화를 체험하는 ‘불교문화 체험형’과 사찰의 자연과 문화 환경을 통해 마음의 휴식을 얻는 ‘휴식형’, 20명 이상의 단체가 일정을 짜 신청하는 ‘단체형’, 숙박하지 않고 반나절 정도 짜인 프로그램을 체험하는 ‘데일리형’ 등이 있다.

최근 들어 기본적인 사찰 문화 프로그램 외에 이색적인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템플스테이도 많아졌다. 금산사(전북 김제시)는 짝수 달의 마지막 주 토요일에 작은 토크 콘서트를 연다. 유명인사나 예술가 등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참가자의 고민도 상담해준다. 골굴사(경북 경주시)에서는 스님에게서 전통무예를 배울 수 있다. 무예를 배운 참가자들은 사찰 뒤에 있는 바위에 올라 함께 무예를 하며 정신을 단련할 수 있다. 서광사(충남 서산)에선 바둑 대국이 펼쳐진다. 참가자는 스님에게서 바둑을 배우고 다른 참가자와 바둑 대결을 할 수 있다.

템플스테이 체험자는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괜찮다. 프로그램은 보통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기는 내용으로 짜여 있다. 바쁜 도시 생활을 떠나 잠시나마 자연을 느끼고 자기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게끔 한다. 비용은 1박에 평균 5만~7만원, 7박에 평균 30만원선으로 사찰에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사찰 문화까지 즐길 수 있다.

템플스테이를 찾는 사람은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 따르면 2013년 템플스테이 참가자 수가 2012년보다 9.5% 늘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 관계자는 “종전엔 템플스테이를 찾는 사람이 40~50대 여성이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에는 힐링을 원하는 20~30대 직장인이 친구나 연인과 함께 색다른 추억을 만들기 위해 찾는 경우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템플스테이는 보통 주말에 진행돼 주중에 회사생활을 하고 주말에 잠시 사찰을 찾아 쉬어가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사찰을 찾는 외국인도 부쩍 늘었다. 2014년 외국인 방문자 수는 2013년보다 21.1% 많아졌다. 이 때문에 스님이 직접 영어로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는 사찰도 20여 곳에 이른다. 》

글=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사진=프리랜서 홍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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