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 구성 노조와 협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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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은행 노조의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하겠다던 정부가 스스로 원칙을 훼손하고 있다. 경제부총리가 불법파업에 나선 노조와 밤샘 협상을 하는가 하면 정부의 고위 관계자가 은행의 경영문제를 노조와 협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 같은 정부의 무원칙한 파업 대응 방식은 앞으로 벌어질 각종 노사분규에 악영향을 미치는 선례로 남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김진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19일 저녁 이날 공적자금위원회가 승인한 조흥은행 매각계획을 번복할 것을 요구하는 이용득 금융노조위원장과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아 밤샘협상을 벌였다. '매각철회'가 협상의 전제라며 정부와 협상하겠다는 노조 측의 요구에 끌려간 것이다.

협상장에 들어가기 전 金부총리는 "정부는 매각에 대해선 더이상 노조와 협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협상장에 들어서는 순간 정부가 불법파업 중인 노조의 협상 파트너가 됐다.

중앙대 김인기 교수는 "당사자 간 합의에 의해 결정된 원칙이나 매각조건이 노조와의 협의를 통해 훼손돼서는 안된다"며 "(부총리가 나서) 이해집단을 일일이 상대하면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광림 재경부 차관은 19일 오전 "매각 후 조흥은행 경영진의 구성과 독자 브랜드의 계속사용 여부에 대해 노조와 협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金차관의 발언은 정부가 고수했던 '노조의 경영개입 불가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한편 파업 사흘째를 맞아 조흥은행의 고객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예금이탈도 이어지고 있다. 조흥은행은 이날 문을 연 점포수는 2백27개로 전체(4백76개)의 절반을 밑돌았다고 밝혔다. 파업을 선언한 지난 11일 48조3백7억원이었던 조흥은행의 예금 잔액은 19일 현재 42조5천억원으로 모두 5조5천억원의 돈이 빠져나갔다.

조흥은행은 한때 전산센터 교대인력 부족으로 주말 동안 온라인 거래를 일시 중단하겠다고 밝혔으나 노조 측이 이날 오전 철수시켰던 전산인력을 현장에 다시 지원함에 따라 이를 정상 가동키로 했다. 그러나 혹시라도 오작동이 발생할 경우 대처할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금융대란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송상훈.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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