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있는 아침]-'주차장의 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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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광규(1941~) '주차장의 밤' 전문

매연과 소음이 층층이 쌓인
주차 빌딩이 텅 비었습니다
별의별 주인들 싣고
형형색색 자동차들 모두 퇴근한 밤
출입구 비상등마저 꺼지고
철근 시멘트의 흉측한 몰골만 남았습니다
사람의 자취 끊어지면 저렇게 되는군요
캄캄한 고요가 깊어갈 때
시커먼 주차장 기둥 뒤에
신분을 알 수 없는 인적이 어른거리면
불안한 긴장이 어둠을 깨뜨리고
보는 이 마음까지 두려워집니다
사람의 형체 나타나면 이렇게 달라지는군요



빈 주차장에 사람이 나타난 일이다. 야단스러울 게 없어서 베낄 만한 비유 하나 써먹지 않았다. 인생이 이런 거다. 습관처럼, 사람이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주차장 같은 거다. 문제는 우리가 습관적인 일상 속에서 무수한 고정관념에 갇히게 된다는 데 있다. 고정관념의 노예로 살아가는 일상인을 각성시키려, 시의 고정관념부터 지웠다. 다시 읽자. 시커먼 주차장에 인적이 어른거린다.

박덕규<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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