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경력 쌓기’ 개각, 이러고도 나랏일이 돌아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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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대통령의 정무특보로 활동해온 새누리당 윤상현·김재원 의원이 어제 물러났다. 20대 총선(2016년 4월)이 가까워오면서 특보 겸직이 공천에서 공정성 시비를 불러올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그제는 유일호 국토교통·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에 대한 사표가 수리됐다. 이들 역시 내년 총선 출마가 예상되는 현직 의원들이다. 3권 분립의 정신을 규정하고 있는 현행 헌법상 행정부를 견제해야 하는 책무가 있는 국회의원들이 정부 부처의 수장이나 대통령의 특보를 맡는 게 적절하냐는 논란은 어제오늘 벌어진 일은 아니다. 여기에 더해 이번엔 물러난 인사들의 재임기간이 7개월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총선 출마 배려를 위한 경력 쌓기 아니냐는 비난까지 쏟아지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정치권에선 “연말께 총선용 순차 개각이 이뤄질 것”이란 얘기가 정설로 떠돌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황우여 교육부총리와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의 출마가 기정사실화되고 있고, 정치인은 아니지만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출마설도 나돌고 있다.

 잦은 총선용 개각은 부처 업무의 연속성과 효율성을 떨어뜨린다. 그렇지 않아도 장관들의 평균 재임기간이 1년6개월(노무현 정부 11.4개월, 이명박 정부 18.9개월) 남짓한 ‘단명 장관’이 문제점으로 지적돼 왔다. 사석에서 만난 한 전직 장관은 “취임 첫해는 전임 장관이 짜놓은 예산으로 사업을 수행할 수밖에 없었다”며 “다음해 일할 사업과 예산을 짜놓으니 그땐 물러나라고 하더라”고 푸념을 늘어놨다. 이런 현실에서 장관들이 소신껏 일하고 성과 내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애당초 무리일 수밖에 없다. 하물며 ‘7개월짜리 장관’이 무슨 수로 업적과 성과를 낼 것이며 혁신을 이룰 수 있겠는가.

 근본적인 문제는 인사권자의 인식이다. 선심 쓰듯 ‘장관’ 감투를 씌워 ‘몸값’을 높인 뒤 선거를 앞두고 내보내는 식의 경력관리용 인사를 대통령의 고유 권한으로 받아들인다면 곤란하다. 장관 자리가 대통령의 사유물은 아니지 않은가.